한권 무려 23만원인데… 엿새 만에 500명 몰렸다

곽아람 기자 2023. 1. 10.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 잡는 ‘북펀딩’
북펀딩으로 제작되거나 제작된 책들. 왼쪽부터 ‘반지의 제왕’ 특별판(알라딘), ‘마침내, 박찬욱’(텀블벅), ‘세계명작 동화를 둘러싼 40년의 여행’(예스24). /알라딘·텀블벅·예스24

9964만200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지난 4일부터 진행 중인 ‘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특별판 독자 북펀드 모금액(9일 오후 6시 기준)이다. 참여자는 467명. 1280쪽짜리 양장본으로 저자 J.R.R. 톨킨이 직접 쓰고 그린 일러스트, 지도, 스케치 30여 컷이 수록됐다. 책 가격은 23만원. 펀딩 시작 첫날에 이미 목표 금액 2000만원을 달성했다. 펀딩 후원자들에겐 톨킨 작품에 나오는 ‘요정어(語)’로 이름을 인쇄해 초판 1쇄에 수록해 준다. 3월 중순 이 책을 출간하는 아르테 출판사 김지연 팀장은 “‘반지의 제왕’ 팬층을 위한 이벤트를 고민하다가 북펀딩을 진행했다. 고가의 책이라 수요를 파악하고 제작비를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제작비 모금과 마케팅.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북펀딩이 유행이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경우 지난 5년간 북펀딩 프로젝트 수는 2.7배, 후원자 수는 3배, 후원 금액은 3.6배 이상 성장했다. 안재욱 텀블벅 매니저는 “지난해엔 텀블벅 전체 펀딩 수에서 출판이 25%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면서 “2011년 서비스 시작 이후 4만 건 넘게 진행했고, 2000억원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고 말했다.

북펀딩 초기엔 제작비 조달이 어려운 1인 출판사 위주로 진행됐지만, 요즘은 중견 출판사들도 활발히 뛰어든다. 펀딩 플랫폼이나 서점 홈페이지 등에 책이 노출되는 효과를 노려서다. 메디치미디어는 지난달 예스24의 북펀딩 플랫폼 ‘그래제본소’를 통해 일본 아동문학 연구자 이케다 마사요시의 ‘세계명작 동화를 둘러싼 40년의 여행’을 출간했다. 펀딩 목표액은 100만원. 제작비라 하기에는 낮은 액수다. 이온누리 메디치미디어 과장은 “저자 인지도가 낮은 책이라 홍보 목적으로 펀딩했다. 초판본 삽지(揷紙)에 후원자들 이름을 넣고 후원자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처럼 가장 먼저 받아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북펀딩 프로젝트가 후원자 이름을 초판본에 수록하는 이벤트를 연다. 후원에 참여한 독자들에게 ‘내가 이 책을 밀어줬다’는 뿌듯함과 재미를 주고, 후원자들이 자기 이름을 사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입소문 효과까지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책이 북펀딩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마니아층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펀딩 성공의 필수 요건이다. 영화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더스크린이 지난해 가을 텀블벅 펀딩을 통해 제작한 ‘마침내, 박찬욱’이 대표적인 예. ‘2022 충무로영화제-감독주간’의 박찬욱 감독 데뷔 30주년 기획 도서로 박찬욱 칼럼, 인터뷰, 대담 등을 총망라해 텀블벅에서만 구매 가능하도록 했다. 목표 금액은 1000권 제작비인 6500만원. 한 달간 모금액은 3억3444만1000원으로 목표 금액의 514%를 달성했다. 안재욱 매니저는 “단순한 상품 판매·구매 행위가 아니라 후원자들의 응원과 지지를 기반으로 한 이벤트로 출판이 이뤄진다는 것이 북펀딩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고 했다. 예스24는 독자들의 재판매 요청으로 충분한 수요가 예측되거나, SF·판타지·만화 등 장르물로 한정판 소장에 대한 팬층이 있는 도서 위주로 펀딩을 진행한다. 박태준 알라딘 대리는 “넓지는 않지만 확실한 지지를 받는 작가 작품, 학술적 성과가 분명하나 대중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등 우리 독자 성향에 맞는 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자가 직접 펀딩을 진행한 책이 출판사 눈에 띄어 출간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놀 출판사에서 출간된 정해나 만화 ‘요나단의 목소리’가 그런 사례다. 3권 세트 목표 금액 2500만원, 모금액은 4351만4000원으로 2021년 텀블벅 만화 매출 2위를 기록했다. 김한솔 놀 편집자는 “텀블벅 펀딩을 보고 작품을 알게 됐다. ‘교회 내 성소수자’라는 특수한 주제로, 저자 명성 같은 다른 근거가 없으면 출판사에서 채택하긴 어려웠다. 텀블벅에서 보여준 반응이 있으니 출간하자고 회사에 강력하게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