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방의 흔적 지켜온 국내 최고의 밤나무

기자 2023. 1.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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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운교리 밤나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집에서 태어나 그 나무를 바라보며 살던 사람이 그곳을 떠났다. 강원 평창 방림면의 산골마을 운교리 지방도로변 낮은 동산에 서 있는 밤나무와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길손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식당집 주인장 이야기다.

밤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200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평창 운교리 밤나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뒤에 식당 건물을 헐어내자 주변 풍광은 휑뎅그렁해졌다.

50대 중반이던 식당의 여자 주인장은 쪽창으로 밤나무가 내다뵈는 방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밤나무집’으로 더 잘 알려졌던 이 집은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가던 주막이자 말들을 쉬게 하는 마방이었다.

지금은 한적한 산골이 됐지만, 조선시대에는 이 마을이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여서 항상 상인과 나그네로 붐볐다고 한다. 마을에는 운교역창(雲橋驛倉)도 있었다고 한다.

운교리를 중심으로 평창 지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밤의 특산지로 기록했을 만큼 질 좋은 밤을 생산하기로 유명했다. 그 가운데에 특히 평창 운교리 밤나무는 평창 지역의 대표 밤나무로, ‘영명자(榮鳴玆)’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다.

크고 우아한 자태의 평창 운교리 밤나무를 사람들은 ‘식당 뒷동산 밤나무’라고만 불렀다. 높이 14m, 뿌리 부분의 둘레는 6m이고, 나뭇가지는 동서로 25m, 남북 방향으로는 20m를 넘게 펼쳤다. 나무 나이를 40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밤나무다. 나라 안의 밤나무 가운데 견줄 나무가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나무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를 이어 나무를 지켜온 식당 주인은 나무가 서 있는 주변 땅과 나무를 모두 나라에 맡기고 새 보금자리로 떠났다.

아득하게 멀고 깊은 사람살이의 들고남을 바라보며 살아온 한 그루의 크고 아름다운 밤나무에는 사람살이의 향기가 담겼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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