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추위를 지갑으로 막는 법
#.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유엔 회의에 연사로 나선 저명한 기상학자인 잭 홀 박사(데니스 퀘이드 분). 온난화를 저지할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미국 부통령이 얼굴을 찌푸린다. 부통령은 기후변화 대책 비용을 지목하며 “수천억달러가 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경제도 환경만큼 위기요”라고 대꾸한다. 기후변화가 먹고사는 문제보다 절실하진 않으니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2004년 개봉한 미국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지구는 결국 기후변화로 대재앙에 빠진다. 북극 얼음이 녹으며 해류 흐름이 끊기고, 이 때문에 뉴욕 같은 미국 북부 도시는 인간이 살 수 없는 혹한의 땅이 된다. 이런 영화를 보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극장을 나서면 안락한 기후가 관객을 기다려야 공포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그렇지 못한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에는 체감온도 영하 50도의 강추위가 닥쳤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중순부터 하순까지 2주간 기온이 기상 관측망이 확충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중위도에 몰아친 이번 혹한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북극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도는 강한 바람인 제트 기류가 약해지면서 북극 냉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홍수처럼 흘러내린 것이다. 이유가 뭘까. 과학계에선 기후변화를 유력한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북극 냉기를 가두는 제트 기류는 본래 북극과 중위도의 온도 차가 많이 나야 견고하게 형성된다. 그런데 요즘엔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제트기류도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계 견해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8~9년 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때 우리는 뭘 했을까. 기후변화가 절실한 나의 일이라고 여기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투모로우> 속 미국 부통령처럼 말이다.
어느 기업이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노력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제품은 무엇인지를 챙겨보고, 자신의 지갑을 열 대상을 꼼꼼히 골랐다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강추위, 나아가 기후변화의 원인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마침 요즘 기업들 사이에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고 있다. ESG 경영의 핵심 가치인 기후변화 대응을 잘하는 기업이 어디인지 지금부터라도 따져볼 일이다.
2050년 이전까지 자사가 쓰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에서 충당하겠다는 기업들의 약속인 ‘RE100’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RE100에 가입한 전 세계 기업은 376개, 한국 기업은 21개이다. 어느 기업이 RE100에 가입했는지, 공언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기업은 없는지 주목해야 한다.
1972년, 전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와 경제학자 등으로 구성된 민간 연구단체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연구진은 인류가 자기 통제 없이 공업화를 추진한다면 세계 경제성장은 1972년 이후 100년 안에 멈출 것이라고 봤다. 문명의 수명, 나아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이번 세기를 사는 우리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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