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아내의 문장성분
2023. 1. 9. 23:13
한성춘
청혼을 도도하게 퇴짜 놓았던 아내는 감탄사
한 떨기 백합처럼 핀 결혼식장에서는 형용사
봄과 같이 살포시 다가왔을 때는 부사였다
결국 그녀는 내 갈비뼈에서 파생된 파생어였다
싼 셋집을 찾아 구석구석 뒤지고
손때 묻은 세간 꾸려 이사 다닌 아내는 접속사였으며
가족들의 옷은 백화점에서 사고
당신 옷은 늘 남대문 시장에서 샀던 아내는 접미사였다
가족들에게는 항상 따뜻한 밥을 차리고
늘 식은 밥을 먹던 아내는 보조어간이었다
내가 숨소리만 한 번 크게 쉬어도
휘어진 등 더 휘어진 아내는 보어였으며
희망이 없는 싸움에 약 한 첩 쓰기에도 주저했던
아내는 관계대명사였다
평생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아내는 소리 없는 명사였으며
평생 누구 엄마로 불린 인칭대명사였다
휘어진 등 더 휘어진 아내는 보어였으며
희망이 없는 싸움에 약 한 첩 쓰기에도 주저했던
아내는 관계대명사였다
평생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아내는 소리 없는 명사였으며
평생 누구 엄마로 불린 인칭대명사였다
단어는 의미에 따라 아홉 개 품사로 나뉩니다.
품사는 기능과 형태에 따라 또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품사가 이렇게 많듯이 아내라는 단어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결혼 전의 아내는 도도한 한 떨기 백합이었으나
그녀는 신혼 초엔 싼 셋집을 찾아 손때 묻은 세간을 꾸려 이사 다녔으며
명절이 다가오면 자기 옷은 남대문에서 사고
아이들과 남편의 옷을 백화점에서 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희망이 없는 병에 걸렸어도 약 한 첩 쓰기에도 주저하며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아내였습니다.
평생 누구 엄마로 불린,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아내는
나에게 아름다운 주어이며 불변어입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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