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가오레’ 게임기 앞, 어른들이 줄 섰다
10대 시절 포켓몬 만화 보고 자라 변주되는 열풍에 쉽게 적응
높은 등급 카드 2만~10만원에 거래…사행성 우려 목소리도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쇼핑몰 5층. 박정서씨(47)가 ‘Pokemon(포켓몬)’이라고 적힌 게임기에 앉아 빠른 속도로 버튼을 두드렸다.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이 박씨의 현란한 손놀림을 넋 놓고 바라봤다. 박씨 뒤로 줄지어 선 20여명 중 절반은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중년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뿐 아니라 혼자 와서 게임만 하고 가는 이들도 많았다.
박씨는 “처음엔 8세 아들 때문에 같이 갔는데 지금은 아들보다 내가 더 많이 한다”며 “평일에는 퇴근 전 게임기가 있는 서점에 들러 한 시간 정도 하다 간다”고 했다. 그는 “저녁마다 정기적으로 3~4명씩 모이는 ‘아빠 모임’도 생겼다”고 했다.
2021년 8월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한 오락실용 게임기 ‘포켓몬 가오레’ 게임기 앞에 40대 중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평일 퇴근길이나 점심시간, 주말 오후가 되면 대형할인점·서점·백화점의 이 게임기 앞에 직장인 수십명이 줄지어 선다. 이 게임기는 서울 38곳을 비롯해 전국 260여곳에 설치돼 있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 10대 시절 포켓몬 만화를 보고 자란 40대들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포켓몬 열풍’에 쉽게 적응한다. ‘성취감’은 이들이 포켓몬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다. 9일 낮 12시쯤 서울 영풍문고 종로본점에서 만난 직장인 권모씨(43)는 “대여섯 판 정도밖에 안 했는데 그중 두 번이나 ‘4성’ 포켓몬을 뽑았으니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하루 수만원을 게임에 쓸 수 있는 경제력도 주로 중년층에서 포켓몬 게임 열풍이 부는 배경 중 하나이다. 이 게임은 시작할 때 1500원이 든다. 잡은 포켓몬을 저장해 디스크를 꺼내려면 추가로 1500원을 써야 한다. 박씨는 “몇 판만 해도 금세 만원을 넘는다”면서 “한 장소당 기계가 1~2개밖에 없어서 가격이 내려가기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 NC백화점에서 만난 정모씨(36)는 이 바닥의 ‘큰손’이다. 정씨는 “하루에 많게는 7만원까지 써봤고 지난 1년치를 다 합하면 2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더 비싼 취미도 많은데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포켓몬은 1~5성으로 계급이 나뉜다. 숫자가 클수록 희귀하고 잡을 확률도 낮다. 가장 좋은 ‘5성 카드’는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한 장에 2만~10만원가량에 거래된다. 그러다 보니 사행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씨는 “포켓몬을 잡을 확률이 미리 나타나지 않아 사실상 운에 의존하는 ‘뽑기’나 ‘로또’에 가깝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유봉섭씨(47)도 “포켓몬 디스크가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에 일부 부수입을 기대해 게임기 앞에 앉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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