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능욕’하는 제자…불법 촬영물 거래에도 “수사 어려워”
[앵커]
"이 사람을 모욕해달라" 지인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집이나 직장 주소까지 온라인에 공유하고 '괴롭힘'을 부추깁니다.
최근 몇 년 새 소셜 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보이는 현상입니다.
알몸 사진을 합성하거나 불법 촬영물을 올린 뒤 성적으로 모욕하는 걸 비롯해 수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아는 사람, 지인을 괴롭힌다고 해서 '지인 능욕'이라고 합니다.
주로 10대, 20대 사이에서 놀이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수치심 뿐 아니라 갖가지 위협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명백한 범죄지만, 현행법으로는 성범죄로 처벌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KBS는 가해자 시점의 이 '지인 능욕'이란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신 이 문제를 '능욕 성범죄'로 규정하고, 오늘(9일)부터 이틀동안 집중 보도합니다.
먼저, 제자가 올린 게시물로 고통받고 있는 한 선생님을 황다예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반디'라는 활동명으로 온라인에 피해 경험담을 올린 5년차 교사입니다.
얼마 전 졸업한 제자들의 연락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성인이 된 제자들이) 트위터에 선생님과 관련된 이상한 것들이 올라온 것 같다...게시글이 몇 개가 되더라고요. 지금 저의 사진과 학교와 저의 이름이 되게 많이 떠돌아 다니고 있구나..."]
단순히 개인정보만 퍼진 게 아닙니다.
게시물에 붙은 꼬리말 그대로 온갖 '능욕'이 가해졌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제 얼굴 나온 것과 그리고 OO(신체 부위)를 함께 옆에 나란히 둔다거나...'걸레 교사', 그리고 그 다음에 올라왔던 거는 이제 '도촬'이라는 해시태그가 추가가 됐어요."]
피해 교사를 촬영한 것이라며 치마 속 사진까지 올라왔고, 성폭력 댓글이 뒤따랐습니다.
거기에 '좋아요'를 누른 이들만 천 명에 육박합니다.
이른바 '지인 능욕'.
대체 어떤 '지인'이 이런 짓을 벌인 건지, 피해자가 수소문에 나섰습니다.
게시자를 찾아내 익명으로 말을 걸어봤더니, 충격적이게도 같은 학교 '제자'였습니다.
그는, 상대가 선생님인 줄도 모른 채 은밀한 제안까지 했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너도 어떤 선생님이든 찍어와라 바지 입고 있으면 엉덩이를 찍고 치마를 입고 있으면 핸드폰으로 밑에 몰래 찍던지, 지나가다가 몰카 펜 던져서 그냥 보내면은 좀 찍혀 있다. 가져오면은 '도촬방'에 초대해 주겠다."]
불법 촬영물을 입장 조건으로 제시한 이른바 '선생 도촬방'.
이미 그 텔레그램 대화방에 들어가 있는 구독자 수가 천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문화상품권으로 불법촬영물을 사고 팔기까지 했고, 대상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10대) 학생들 보통 나이랑 이렇게 이름이랑 박제하면서 '인스타' 아이디 이런 거 알려주고 하거든요. '우리 엄마 능욕해 주세요' 하면서 올리는 경우도 봤어요."]
공유된 연락처 등을 이용한 2차, 3차 가해도 뒤따랐습니다.
['능욕 성범죄' 피해 초등생 보호자 : "엄마 이상한 사람한테 카톡이 와 이렇게 했고...갑자기 이제 한번 자면 좋지, 이런 식의 문자가, 이런 식의 카톡이 계속 오는 거예요."]
피해자들은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치마를 입은 나의 잘못이었나. 교사를 하지 말았어야 된다는 생각까지도 가니까...저도 제 일상생활을 살고 싶어요, 너무. 어떻게 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누군가 만났을 때, 누군가 내 사진을 보지 않았을까, 이것들이 되게 계속 계속..."]
KBS 뉴스 황다옙니다.
[앵커]
피해를 당한 선생님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수사가 어렵다'는 겁니다.
피해가 확실하지만 처벌 근거는 불명확하다는 게 대부분의 '능욕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는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어서 김혜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피해 교사는 처음부터 '성범죄'로 신고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은 불법 촬영을 당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치마 불법 촬영된 그 사진이 본인 게 맞는지. 본인, 정확히 언제 찍히는지 알 수 있겠냐. 그 치마를 가져오라고, 이제 그 치마가 있어야 된다. 본인 게 아니다 싶으면 이거는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가야 되는 거고..."]
결국 명예훼손으로 수위를 낮춰서 형사과가 아닌 사이버수사과를 찾았는데, 거기서도 처음엔 막막한 답변 뿐이었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트위터에 얘기를 하면 최소 일 년이 걸리고, (가해자) 신상을 주기까지…. 그러니까 좀 더 특정해서 차라리 다시 와라."]
수차례 문의를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끝내 신고를 포기하고 만 사례도 있습니다.
10대 피해자 B양, 마찬가지로 텔레그램에 정보가 유포돼 경찰에 문의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서버가 외국에 있어 거의 못 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잡는다 해도, 처벌은 또 하나의 산입니다.
능욕 성범죄 가해자는 크게 두 부류.
사진과 정보 등을 처음 올린 게시자가 있고, 거기 모욕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을 추가로 퍼뜨리는 가담자들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엔 처벌 근거 자체가 아직 뚜렷이 마련돼있지 않습니다.
최초 유포자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나 명예훼손으로만 처벌 가능하고 '성범죄'로는 처벌이 어렵습니다.
[허민숙/국회 입법보좌관 : "성적인 모욕을 담은 것은 명예훼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적인 모욕을 담은 게시물이라거나 신상유포는 성폭력처벌법으로 별도의 규정을 마련해서 처벌하는 것이 지금 좀 필요하다..."]
법무부와 국회에서 능욕 성범죄를 '온라인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맞춤형 처벌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긴 했는데, 이후의 절차에는 속도가 붙질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안민식 황종원/영상편집:박주연/그래픽:이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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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다예 기자 (allyes@kbs.co.kr)
김혜주 기자 (k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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