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선고 앞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시효’ 성립하는가…‘조작’ 알고 있었나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1심 선고공판이 다음달 열린다. 피고인만 9명에 달한 재판에서 검찰은 “중범죄”를, 피고인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1년 가까이 다퉜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위 사진)의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키우는 정황들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공소시효, 시세조종 및 공모 여부 등 재판의 주요 쟁점은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과 맞닿아 있는 터라 1심 판단이 김 여사 수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아직 김 여사를 서면조사도 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9일 사건의 쟁점과 김 여사가 받는 의혹, 법정에서 나온 증언을 정리했다.
검찰, 권오수 전 회장·공범들 2009년부터 3년간 시세조종 행위 ‘하나의 범죄’로 규정…재판부 인정 땐 김 여사 공소시효 남아
가장·통정매매, 고가매수·시종가 관여 등 ‘조직적·계획적’ 여부도 쟁점…김 여사, 공범들 ‘연락구조’에 포함돼 자유롭지 못해
김 여사 계좌 6개 중 2개 ‘조작 동원 계좌’로 분류…비슷한 사건에서 ‘전주’ 역할 한 피고인 징역 3년 구형받고 선고 기다려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간다. 독일 자동차 BMW 공식 딜러 회사인 도이치모터스는 권오수 전 회장이 2002년 설립했다. 2009년 1월에는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해 우회 상장했다. 권 전 회장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팔아 인수자금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주가는 상장 직후 9000원에서 같은 해 12월 193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검찰은 주가를 띄워야 했던 권 전 회장이 주가조작 ‘선수’로 불리는 이들에게 이익배분 등을 약속하며 시세조종을 의뢰했다고 본다. 권 전 회장이 주식과 현금, 지인을 비롯한 다수 투자자의 계좌를 제공했고, ‘선수’와 ‘주포’(주가조작 총괄기획자)들은 이를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했다는 게 공소사실의 큰 틀이다.
공소시효 - “3년에 걸친 하나의 범죄” vs “장기간 시세조종 불가능”
검찰은 2021년 12월 권 전 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범죄 기간을 2009년 12월23일부터 2012년 12월7일로 적시했다. 이 기간에 있었던 5단계의 시세조종 행위를 모두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범죄’로 규정했다. “3년 동안 범행이 끊기지 않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올려야 한다는 피고인들 동기가 범행 끝까지 유지됐다”는 것이다.
반면 권 전 회장 등 피고인들은 설령 시세조종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단계별로 떼어내 범죄 행위를 각각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상 시세조종은 6개월 미만 단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며, 변수가 많은 주식시장에서 3년이란 기간 동안 시세를 조종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는 3년간 등락을 반복하며 정상적인 주가 패턴을 보였다고도 했다.
양측이 범죄 기간을 두고 다툰 이유는 공소시효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등에 따라 이 사건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검찰 해석대로 3년간 이뤄진 5단계 시세조종을 하나의 범죄로 묶으면 공소시효는 마지막 범행이 끝나는 시점부터 따진다. 2022년 12월7일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1년 정도 남아 있던 시점에 권 전 회장 등을 재판에 넘긴 게 된다.
피고인 측 주장대로 단계별로 1개씩, 총 5개의 독립된 범행으로 본다면 1단계(2009년 12월~2010년 9월)·2단계(2010년 9월~2011년 4월)·3단계(2011년 4~10월)에 해당하는 범행의 공소시효는 검찰이 기소한 시점에 이미 완료된 상태가 된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는 권 전 회장 측은 “특히 2011년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시기엔 거래량 자체가 줄고, 시세조종이 가능한 최소 조건조차 갖춰지지 않았는데 검찰이 공소시효를 연장하려 무리하게 범행 기간을 늘렸다”고 말한다.
권오수 전 회장 공소시효에 김 여사 수사 달렸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개입 의혹은 공교롭게도 검찰과 피고인들이 공소시효를 다투고 있는 1단계와 2단계 시기에 집중돼 있다. 1단계는 주가조작 ‘선수’ 이모씨가 주도하던 1차 작전, 2단계는 투자자문사 대표인 또 다른 이모씨와 ‘주포’ 김모씨가 주도한 2차 작전 시기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1차 작전 시기에 해당하는 2010년 1~5월에만 ‘선수’ 이씨에게 계좌를 맡겼다고 주장해왔으나 재판에선 2차 작전 시기인 2011년 1월 작성된 ‘김건희 파일’이 공개됐다. 2차 작전을 주도한 투자자문사 노트북에서 검찰이 발견한 이 파일에는 김 여사의 주식 현황과 계좌 내역 등이 정리돼 있다. 1·2차 작전세력 모두에게 계좌를 빌려준 계좌주는 김 여사가 유일하다고 알려지면서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이 커졌다.
1심 재판부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피고인 측 주장대로 5개의 별개 범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1·2단계 시기에 연루된 김 여사의 공소시효는 이미 완료된 상태가 된다. 반대로 재판부가 ‘3년에 걸친 하나의 범죄’(포괄일죄)로 볼 경우 김 여사의 공소시효는 아직 남아 있게 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범 중 한 명만 재판에 넘겨져도 공소시효가 정지되는데,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면 권 전 회장과 공범 혐의를 받게 된다. 이 경우 공소시효 문제없이 김 여사를 기소할 수 있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시세조종 공모 - “교묘한 조직적 범행” vs “욕망 따른 자발적 거래”
검찰은 재판에서 권 전 회장과 공범들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이들이 미리 물량과 가격을 정해둔 채 서로 짜고 주식을 사고팔거나(가장·통정매매), 주가를 띄우려고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는 방법(고가매수)을 이용했다고 했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체결 가능성이 아주 낮은 가격으로 대량주문을 내거나(허수매수), 장 마감 직전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시종가관여)고도 했다.
검찰은 이들이 3년간 가장·통정매매를 522회, 고가매수·허수매수·시종가관여 등을 7282회 했다고 봤다. 권 전 회장과 공범들이 직간접적으로 156개 계좌를 동원해 이같이 주가를 조작했고, 그 결과 106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고 했다. 법정에선 이들이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앞서 얼마에 몇주씩 사고팔지 모의한 문자메시지 등이 주요 증거로 공개됐다.
권 전 회장 측은 시세조종 및 공모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권 전 회장이 ‘선수’들에게 시세조종 의뢰는 물론 손실보전이나 이익배분을 약속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 오너로 경영권 유지를 위해 주식을 꾸준히 갖고 있어야 했던 권 전 회장으로선 주가조작으로 얻을 게 없다”고 했다. 범행 동기도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 공범들도 “자발적 판단에 의한 주식 거래”라고 입을 모았다. 도이치모터스 회사 전망이 좋다는 정도의 추천을 받고 스스로 판단해 주식을 사고팔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시세조종에 이용됐다고 꼽은 156개 계좌 역시 정상적인 투자주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입증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권 전 회장 측 변호인은 결심공판에서 “주식투자 관련 업무에 종사한 다른 피고인들은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주식 거래를 한 것”이라고 했다.
시세조종 공모 인정된다면…김 여사, 주가조작 사실 알고 있었을까
김 여사의 경우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했어야 검찰이 정지된 공소시효를 적용해 기소할 수 있다. 단순히 돈을 댄 ‘전주’에 그친 게 아니라 작전세력이 주가를 조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이 범죄의 핵심 증거로 제시한 문자메시지 등에선 김 여사 명의 계좌가 시세조종에 사용된 흔적이 다수 보인다.
2차 작전세력을 주도한 ‘주포’ 김씨와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 민모씨가 2010년 11월1일 주고받은 문자가 대표적인 예다. 김씨가 민씨에게 “3300원에 8만개 매도하라고 하셈”이라는 문자를 보내자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정확히 8만주가 쏟아졌다. 김 여사의 매도 물량은 미리 같은 가격에 주문을 걸어둔 민씨 등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검찰은 법정에서 “당시 김 여사 명의 계좌는 영업점 단말로 김 여사가 직접 전화해 거래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민씨→이씨(2차 작전세력 투자자문사 대표)→권 전 회장→김 여사’ 순으로 연락이 간 것이냐고 캐물었다. 핵심 공범들의 연락 구조에 김 여사가 포함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씨는 “추정할 수밖에 없다”며 “모른다”고 했다. 민씨는 지난해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지난해 11월 돌연 귀국한 후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식의 하루 거래량이 500~1000주 수준에 불과하던 점 등에 비춰, 작전세력끼리 물량을 돌리며 주가를 띄운 것으로 봤다. 민씨 등은 주식을 대량 보유한 매도자가 사전에 매수자를 구해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장이 끝난 후 지분을 넘긴 ‘블록딜’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거래가 ‘통정매매’인지 ‘블록딜’인지 판단하겠다고 했다. 만약 재판부가 통정매매로 결론내려 “시세조종을 공모했다”고 본다면, 권 전 회장 일당의 연락 구조에 묶여 있는 김 여사도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주가조작 세력이 3년간 진행한 가장·통정매매 522회 중 김 여사 계좌는 106회 등장한다. 반면 주범들이 사고판 주식이 정상 거래로 판단될 경우 주가조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 여사의 공모관계도 덩달아 느슨해진다.
재판에서 드러난 ‘자금줄’ 김 여사 흔적들…또 다른 ‘전주’ 징역 3년 구형
검찰이 시세조종에 동원됐다고 본 156개 계좌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주목된다. 검찰은 이를 주가조작 세력이 관리한 계좌 82개와 투자자가 직접 거래한 계좌 74개로 구분했는데, 후자에 대해서도 ‘비정상적 매수 유도에 의한 대량매집 계좌’로 판단했다. 권 전 회장 등이 미공개 정보를 건네며 투자를 권유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샀기에 시세조종에 동원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가조작에 사용된 김 여사의 계좌는 총 6개로, 검찰은 이 중 2개를 ‘비정상적 매수 유도에 의한 대량매집 계좌’로 분류했다.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에게서 호재성 정보를 받아 직접 거래한 계좌라는 뜻이다. “김 여사는 주가조작 사실을 모른 채 우연히 이씨(1차 작전세력 선수)에게 계좌를 맡겼고, 이씨와 관계를 끊고 나선 이씨가 사뒀던 주식을 정상적으로 거래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과 배치된다. 권 전 회장은 김 여사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미공개 정보를 알린 적 없다고 다투고 있다.
김 여사와 비슷하게 ‘전주’ 역할을 한 피고인도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검찰은 부동산개발업자인 손모씨를 권 전 회장 등의 공범으로 기소한 후 징역 3년과 벌금 50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손씨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 중 유일하게 ‘전주’로 분류된 인물이다. 그는 2차 작전세력이던 ‘주포’ 김씨 추천으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2010년 8월 처음 샀다. 그는 2012년 9월까지 주식을 거래했으나 “누구와도 공모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가조작 사건에서 자금을 대는 ‘전주’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주’라도 미필적으로나마 주가조작 범행을 인식하고 가담 의사가 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이다. 김 여사의 경우 2010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본인 명의 계좌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거래됐다. 재판에선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에게 ‘선수’ 이씨를 소개한 사실, 5단계 시기에 ‘주포’ 김씨가 권 전 회장에게 “주가를 방어해달라”고 문자를 보내자 김 여사가 1만주를 매수한 기록 등이 제시됐다.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의 모친인 최은순씨의 증권계좌를 일임해 관리한 사실도 다뤄졌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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