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 ‘더 글로리’에 비친 ‘언터처블 이상민’

김민아 기자 2023. 1. 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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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정부를 대표해서, 개인적인 자격을 포함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고’란 용어를 사용한 걸 두고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 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 장관은 “특별한 의식 없이 발언한 것”이라고 했다.

김민아 논설실장

앞서 이 장관은 지난해 12월 국조특위 기관보고에서, 참사 인지 후 8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는 지적을 받자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다. 그사이에 놀고 있었겠냐”고 맞받았다.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제가 골든타임을 판단할 자격이 없는데 성급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11월 중앙일보와의 문자 인터뷰에선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싶지 않겠나”라고 한 적도 있다. 논란이 되자 “기사화될 걸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발언도 문제지만, 해명이 더 문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온 나라가 이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특별한 의식 없이” 유족에게 사과하고, “성급하게” 국회의원에게 반박하고, “기사화될 걸 몰라서” 생각나는 대로 인터뷰했다고 고백한다. 지금 그는 한국에서 가장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공직자일 것이다.

이 장관이 만끽하는 자유는 물론 그의 능력이나 성실성에서 오지 않았다. 그의 자유는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후배라는 데서 비롯한다. 이 장관은 “현재 제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실책과 실언을 하고도, 또한 여론이 일관되게 경질을 요구하는데도, 버틴 장관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책임이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지,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감싸기에 바쁘다. 윤 대통령이 북한 무인기 대응과 관련해 군 수뇌부 문책론에 신중한 것조차 이 장관 책임론과 연계될까 우려해서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이다. ‘수사에 성역은 없다’던 경찰 특별수사본부도 소환조사 한 번 없이 이 장관에게 면죄부를 안겨줄 참이다. 그사이 참사의 책임은 중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세월호 참사는 ‘각자도생(各自圖生)’ 네 글자를 각인시켰다. 시스템은 위기가 닥쳤을 때 무능하고, 위기를 수습할 땐 무책임하다는 걸 시민은 눈치챘다. 공직자들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법률과 규정 뒤에 숨어 보신에 급급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의 트라우마를 소환하고 있다.

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넷플릭스 제공

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잔인한 폭력에 시달리던 문동은(송혜교)이 자퇴 후 복수를 결심하고, 18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해가는 내용이다. 동은이 학교폭력을 당할 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교사도, 경찰도, 심지어 엄마도. 법 역시 동은 편은 아니다. 앞서 드라마 <빈센조> <모범택시>가 나왔을 때 ‘자력구제(自力救濟·self-help)’ 즉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더 글로리>에 이르러선 대중의 반응이 달라졌다. 모든 공·사적 시스템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동은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력구제뿐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가해자에게 어떠한 서사도 부여하지 않는 ‘피해자의, 피해자에 의한, 피해자를 위한’ 복수극에 열광하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형벌권은 국가에 귀속된다. 자력구제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내 가족을 죽인 범인을 내가 찾아낸다 해도 내가 응징해선 안 된다. 이것이 허용될 경우 세상은 폭력으로 넘쳐나고, 질서와 안정과 평화는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기는 가상공간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정의의 히어로가 다크 히어로로 바뀌더니, 이제는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징벌하는 서사가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법전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책임져야 할 자들이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민 같은 이들이 계속 ‘성역’으로 남고 ‘언터처블’의 특혜를 누린다면, 현실공간에서도 자력구제의 유혹은 커질지 모른다. 피해자도 더 이상은 착한 얼굴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 <더 글로리>를 향한 열광은 이를 의미한다.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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