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재난문자
1983년 어느 겨울날, 민방위훈련일도 아닌데 사방에 사이렌이 요란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울먹였다. 전쟁이 터져서 놀러나간 아이를 잃어버리는 줄 아셨던 것이다. 제일 빠른 소식통이 라디오 방송이던 시절이다. 스마트폰 사용률 97%인 요즘이라면 ‘북한 공군 장교, 소련제 미그기 끌고 남한 귀순’이라는 정부의 재난문자를 받았을 것이다.
한국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재난문자 전국 송출체계를 도입했다. 2013년 4세대(4G) 휴대전화부터는 수신기능을 의무화했다. 수신자가 대비 또는 대피하도록 관계부처가 이동통신망을 통해 공습경보 같은 위급재난의 경우 60데시벨(㏈), 긴급재난은 40㏈의 알림음과 함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낸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태풍, 호우, 강풍, 풍랑을 경고하는 용도로 보편화됐다. 서울시립대 연구분석에 따르면 자연재해 관련 긴급재난문자를 1회 더 발송하면 피해 복구비가 약 1억원 감소해 비용 대비 편익이 100배라고 한다. 하지만 남발하면 효과가 무뎌진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재난문자의 홍수를 빚었다. 전년 대비 60배 폭증한 5만4700여건에 달했다.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이 알림을 끌 정도였다.
9일 이례적인 재난문자가 잇따랐다. 새벽 1시쯤 인천 강화군 해역에서 규모 3.7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재난문자 경고음이 수도권의 조용한 밤을 갈랐다. 다행히 지진 피해가 없어 안심하던 아침에 또 재난문자가 떴다. 추락하는 미국 지구관측 위성의 일부 잔해물이 한반도 인근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해당 시간 외출 시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우주 물체 파편에 맞을 확률은 번개 맞을 확률보다 낮다지만, 지구 밖으로까지 확대된 재난의 가능성을 접하고 보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이에 비하면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보내온 재난문자는 하찮게 보인다. 장애인단체 회원들의 지하철 탑승 시위로 전동차가 4호선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했다는 내용이었다. 재난문자를 이용해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반감을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공공재인 재난문자 시스템을 남용하면 정작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경각심이 필요하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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