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타고난 '연금술사' 김주형, 새해 첫 PGA투어부터 특급 질주
[골프한국] '노마드 골퍼' 김주형(20)의 골프 행적을 보면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鍊金術師)를 연상케 한다.
티칭프로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 호주 필리핀 태국 등지를 떠돌며 어깨너머로 골프를 익힌 그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같은 '세계 넘버원 골퍼'의 꿈을 품는 순간 그는 '골프 연금술사'의 길로 들어섰다. 수은이나 염산 등 여러 화학물질을 배합해 금이나 은 같은 보석을 만들어내겠다는 연금술사의 꿈이나 동양의 한 어린이가 세계 넘버원 골퍼가 되겠다는 꿈이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이 황당한 꿈을 놓지 않고 지구촌 이곳저곳을 누볐다. 어린 나이에 '세계 넘버원 골퍼'의 꿈만 믿고 한국과 일본, 동남아 등지를 전전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PGA로부터 특별 임시회원 자격을 받아 PGA투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보인 그의 행적은 중세의 연금술사를 닮았다. 아니 실제로 금 전문채굴자를 보는듯하다. 모든 대회에서 그는 열심히 금을 채굴해 정제(精製)작업을 통해 순금 24K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8월 그는 특별 임시회원으로 3번째 출전한 윈덤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두고 10월 2022~2023시즌 경기로 열린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2승 고지에 올랐다. PGA투어 첫 우승기록으로는 조던 스피스(19세 10개월 14일)에 이어 두 번째 최연소 우승자(20세 1개월 18일)이고 2000년대생으로 첫 챔피언이다.
그는 또한 타이거 우즈 이후 26년 만에 21세 이전에, 그것도 역대 최연소로 PGA투어에서 2승을 올린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됐다. 우즈는 19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승리를 거두고 2주 뒤 월트디즈니 월드 올즈모빌 클래식에서 2승째를 올렸다. 당시 우즈의 나이는 20세 9개월. 김주형은 20세 3개월이어서 우즈보다 6개월 정도 빨리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우즈 이전엔 1932년 랠프 굴달(미국)이 21세 2개월에 2승을 올린 게 최연소 기록이다.
신인으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출전해 귀중한 경험을 한 뒤 프레지던츠컵 대회에 인터내셔널 팀으로 참가해 강렬한 어퍼컷 세리머니로 상징되는 플레이로 세계 골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PGA투어의 CEO(Chief Energy Executive)'라는 극찬을 들으며 '셀럽'의 반열에 올랐다. 12월 초 바하마에서 열린 우즈 주관 히어로 월드 챌린지 초청선수 20명에도 포함돼 11위의 성적을 올렸다.
6~9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카팔루아의 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파73)에서 열린 PGA투어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김주형은 스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대회는 지난해 우승자와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 출전한 선수 등 39명만 참가한 특급 대회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잰더 쇼플리(미국)가 2라운드를 치른 뒤 부상을 이유로 기권, 38명이 경기를 벌였다.
1라운드부터 4라운드 중반까지 선 수행자를 방불케 하는 고요한 플레이로 노보기 행진을 하던 콜린 모리카와(미국·26)의 우승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스페인의 국민영웅 존 람(29)이 불꽃 같은 대추격전을 펼쳐 근래 보기 드문 대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모리카와에 7타 뒤져 마지막 라운드를 맞은 존 람은 이글을 포함해 이날 하루 10언더파를 몰아쳐 모리카와를 2타 차이로 따돌리고 '별 중의 별'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5월 멕시코오픈 이후 8개월 만에 PGA투어 통산 8승째를 거뒀다.
콜린 모리카와의 인상적인 플레이, 이에 굴복하지 않고 대역전극을 펼친 존 람의 드라마는 이번 대회 압권이었지만 신성(新星) 김주형(21)의 선전 또한 세계 골프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첫 라운드부터 이글 두 개를 포함해 8언더파 단독 4위에 오른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기라성 같은 대선수들 틈에서 새로운 골프 영웅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번 대회에서 김주형은 사실상 특급대우를 받았다. 그 단적인 예가 이번 대회의 조 편성이다. PGA투어측은 대회 때마다 미디어와 골프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특별조(Featued Group)를 편성한다. 보통은 비슷한 랭킹 선수끼리 조를 짜지만 이번 대회에서 김주형은 특별조로 편성됐다.
1라운드에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골퍼 중의 한 명인 조던 스피스(29)와 함께 경기했다. PGA투어 통산 13승에 한때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고 품행 방정한 골퍼로 인정받고 있는 그와 함께 경기한다는 것은 동반자로선 대단한 영광이다.
김주형은 8언더파(단독 4위)로 크리스마스 때 그를 집으로 초대해준 조던 스피스(6언더파 공동 11위)를 이겨 미안해했다. 히어로 월드 챌린지를 끝내고 조던과 같이 비행기를 탔던 그는 조던의 초청으로 크리스마스 때 조던의 집에서 조던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2라운드에서 존 람(29)과 한 조로 경기해 김주형이 2타 차이로 존 람을 누르기도 했다. PGA투어 통산 7승의 존 람 역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적이 있고 현재 5위인 강자다. 3라운드에선 PGA투어 1승을 포함해 국제대회 8승의 영국 대표주자 맷 피츠패트릭(28)과 경기를 펼쳐 2타 뒤졌다. 4라운드에선 대역전극을 펼친 존 람과 다시 한 조로 경기하며 대선수의 뒤집기 쇼를 지켜보는 귀중한 체험을 했다.
3라운드까지 존 람과 함께 공동 5위였던 김주형은 4라운드에서 존 람의 대추격전에 자극받아 이날 5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22언더파 270타로 공동 5위에 올라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자리를 지켰다. 이경훈(31)이 맷 피츠패트릭(잉글랜드), 스코티 셰플러(미국) 등과 함께 21언더파 271타로 공동 7위, 임성재(25)는 조던 스피스, 캐머런 영 등과 19언더파 273타 공동 13위에 올랐다.
연금술사의 집념을 타고난 김주형의 스타성은 PGA투어가 그에게 쏟는 관심과 대우에서 입증되고 있다.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 팀 단장 트레버 이멜만이 그를 한번 만난 뒤 열렬한 팬이 되어 인터내셔널 팀원으로 전격 발탁한 것이나 타이거 우즈, 로리 맥길로이 등 '하늘 같은' 선수들이 그와 대화를 나눈 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점, PGA투어닷컴 홈페이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그에 관한 기사와 칼럼을 싣는 것은 그의 잠재적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와의 계약은 그의 미래가치를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맥길로이와 함께 나이키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김주형의 상품성을 그만큼 높게 평가했다는 뜻이다. 5년간 2000만달러(약 253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김주형의 세계랭킹(15위)에 비해 매우 후한 대접으로 한국 골프 역사상 가장 '몸값'이 높은 선수로 등극했다.
업계에선 김주형이 계약할 때 세계랭킹 9위인 토미 플리트우드(32·잉글랜드·현재 23위)가 연간 후원금이 400만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김주형의 후원금 규모는 세계 톱10에 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골프업계에 따르면 기존 스폰서인 CJ가 연간 150만달러 계약서를 준비했다가 나이키의 베팅 금액에 재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의 경우 2017년 나이키와 계약을 연장하면서 '10년·1억달러'(약 1268억원)를 보장받았다. 계약 내용을 봐도 나이키가 김주형에게 상당 부분 양보한 것을 알 수 있다. 나이키 측은 나이키 브랜드 외에 오른팔 소매에 김주형이 지난해 후원 계약한 명품 시계 브랜드 '오데마피게' 로고를 달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오데마피게와 맺은 후원 계약 기간이 겹쳐 계약 잔여기간 동안 오데마피게 로고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거느린 아쿠쉬네트도 김주형에게 볼과 클럽을 후원한다.
타고난 사교성과 유창한 외국어 능력, 미디어를 다룰 줄 아는 언어표현력 등으로 무장한 '골프 연금술사' 김주형이 찾아 나선 금맥이 정말 궁금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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