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사회를 위한 사회정책의 전환
[기고]
[기고] 양난주 |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실태조사와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고독사가 고령의 독거노인이 아니라 50대 남성(26.6%)과 60대 남성(25.5%)에게서 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적지 않은 청년들이 가족을 돌보느라 학업을 중단하고 취업을 미루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노동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라 가정했던 50대 남성이 사회적 고립과 고독사 위험이 가장 큰 인구집단이고 새로운 사회 출발에 분주할 줄로만 알았던 청년이 사실은 중증질환,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를 돌보느라 고군분투한다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이제 정부가 주목하게 됐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해석과 대책이다.
중장년 고독사나 청년 가족돌봄 현상은 연령을 기준으로 사회적 지원 대상을 나누기 어려워진 현실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복지에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빈곤 여부였고, 빈곤에 빠질 위험은 노동시장 바깥에 머무는 연령과 조건으로 판별되곤 했다. 아동, 노인, 장애인, 한부모, 독거 등의 특징이 사회적 지원 대상을 가르는 기준이 되곤 했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 사회복지도 그렇게 대상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고 사회복지기관도 서비스 대상별로 유형을 달리하면서 설립되고 확대돼왔다.
새롭게 발견된 고독사 위험집단인 중년남성과 가족을 돌보는 청년을 돕기 위해 대책은 두가지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 하나는 중년남성과 가족돌봄청년을 표적화하는 것이다. 혼자 사는 실직 상태의 중년남성, 그리고 환자나 장애인 가족과 함께 사는 청년을 ‘발굴’해 사회적 지원책을 신설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취약층을 찾아 더하는 접근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존 사회보장급여와 돌봄서비스의 분절성과 불충분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전자가 즉각적 대응책이라면 후자는 구조적인 해법이다.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4인 가구가 표준적인 생활의 단위이고 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전업주부라는 성 역할을 전제로 설계하던 사회정책은 이미 오래전에 낡았다. 2021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4%인 약 717만 가구다. 1·2·3인 가구가 80%를 넘는다. 65살 이상 고령자는 900만이 넘어 곧 1천만을 바라본다. 우리 사회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혼자 생활하기 어려울 때 같이 사는 가족이 책임지고 돌보기 어려운 구조다. 사회적 지원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잠재된 위험의 대비책으로 준비되는 것이 현실적이다.
가족을 주 돌봄자로 여겨온 사회정책을 그대로 두고 1인 가구 지원정책을 강화한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가족이 아니라 개인을 표준단위로 삼는 새로운 사회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가족에게 미뤄왔던 “돌봄”이 사회정책의 중심으로 와야 한다. 돌봄은 혼자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어떤 순간, 아프고 다치고 노쇠한 삶의 순간을 지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간병, 보육, 요양, 활동지원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들이 모두 돌봄이다. 현대사회 가족은 돌봄을 전담하기 어렵다. 일하고 있거나 멀리 살거나 본인이 아프거나 다른 이를 돌봐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는 사회적 격리를 경험하면서 돌봄이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노동, 필수서비스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제 가족에게 도맡겨온 돌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수행하고 보상할 때다.
서울시 모든 자치구 행정복지센터에는 돌봄에스오에스(SOS)센터가 있다. 50살 이상 성인(혹은 이웃)이 필요한 지원을 신청하면 돌봄매니저가 방문해 돌봄 계획을 세우고 기존의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한다. 이용자 중심의 돌봄보장체계를 지역사회에 구축하는 데 공공이 앞장섰다는 점에서 선도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 사업으로 고립 가구가 발견되고,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 돌봄에스오에스사업의 안정적 수행에 앞장섰던 기관이 서울시가 설립한 사회서비스원이다. 사회서비스원은 그동안 주로 민간 비영리와 시장에 맡겨 공급해온 사회서비스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려고 17개 시·도에서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사회적 돌봄이 가장 필요했던 어려운 시기에 만들어져 고군분투해온 사회서비스원이 새해 우리 사회 돌봄보장의 새로운 길을 다채롭게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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