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병존적 채무인수’는 한일관계 순차적 해결의 시작
[일제 강제동원]
[왜냐면] 최은미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정부가 오는 12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마련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하며, 강제징용문제 해결이 사실상 마지막 수순에 들어간 듯 한다. 정부의 유력 안으로 거론되는 ‘병존적 채무인수’란 피고(일본기업)의 채무를 제3자가 인수해 원고(피해자)에 배상하는 방식이다. 제3자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왜 일본기업이 아닌 제3자가 배상하는가? 둘째, 잘못한 일본기업은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는데, 왜 아무 잘못 없는 한국 기업이 재원을 마련하나? 셋째, 일본은 움직이지 않는데, 왜 한국만 문제 해결을 서두르는가? 넷째, 강제징용문제가 한일관계에 걸림돌인가?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14년 넘게 지속한 한일국교 정상화 교섭과정에서도 끝까지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양국이 합의하지 않았다는 것에 합의한(agree to disagree)’ 채 마무리되었다.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으로서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절대 따를 수 없고, 한국으로서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데다 국내 최고 의결기구인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사항이었다. 이처럼 합의할 수 없는 원칙과 원칙이 부딪혀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차갑게 들리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 소송은 우리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 간 민사 사건이다. 정부는 소송 당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강제징용문제의 특성상, 정부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 쪽에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첫째, ‘국민’이다. 소송 당사자인 피해자 개개인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며,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관계자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나, ‘배상금 수령을 원하는’ 피해자·유족의 의견과 입장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강경한 목소리에 가려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지만, 이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도 국가의 책무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생존자 47명 가운데 34명이 합의금을 수령했다(2017년 기준). 누가 이들의 권리 행사를 비판할 수 있는가.
둘째, ‘국익’이다. 2018년 말부터 극도로 악화한 한일관계가 4년 넘게 지속하면서 우리는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협력’ 아닌 ‘갈등’을 논의해야 했고, 수많은 물적·인적 외교자원이 한일관계에 투입됐다. 양국 갈등으로 포기해야 했던 기회비용에 따른 외교·안보·사회·경제적 손실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강제징용문제가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아니라,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논의해야 할 우선순위에 있다는 의미다.
셋째, ‘이상보다는 현실’이다. 이상적 원칙이 아닌, 문제 해결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세우고,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고수해 온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은 아름답다. 많은 이들에게 박수받을 수 있는 이상적 문구이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뿌듯함마저 든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이상적 문구에 가려 해가 4번 바뀌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난 4년 동안 강제징용문제는 사실상 방치되었고, 원칙만을 앞세우는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은 없었다. 양보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한쪽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고, 직진할 수 없다면 조금 멀더라도 돌아가자는 것이다. 동시 병행할 수 없다면 순차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지난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일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싸우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적 해결방안을 제시한다고 강제징용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문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하며, 기려야 할 과제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문제의 끝이 아닌 시작에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산하야 “허망하게 안 간다” 했잖아, 엄마는 아직 너 보러 서울 가
- 군 ‘북 무인기’ 대응 따로 놀아…문제는 장비 아닌 소통 부재
- “귀신이 보여요” “안 들려요”…기상천외 병역비리 수법들
- 국민연금 재정추계 이달 말 공개…기금 소진 시점 앞당길 듯
- 미국 인공위성 잔해물 한반도 밖에 떨어진 듯…“피해 접수 없어”
- 대통령실·친윤계가 전대 장악…룰 바꾸고 후보 가지치기
- 은행 희망퇴직 ‘러시’…한푼이라도 더 줄때 떠나자?
- [단독] 젤렌스키 최측근 “우크라전, 늦어도 여름께 끝날 것”
- 초등 돌봄교실 2025년부터 ‘저녁 8시까지’…“석식도 제공”
- 윤 대통령 부부 ‘풍자’ 전시회…국회사무처 “비방이다” 모두 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