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장애인은 없다
[왜냐면]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새해 아침부터 장애인의 시위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 2일부터 지하철 선전전을 재개했다. 이에 맞서서 서울시는 법원의 ‘5분 이내 탑승’ 조정안조차 무시하며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을 동원하여 탑승 자체를 막거나 무정차 통과시키고 있다. “장애인도 시민입니다!” “지하철을 타게 해주십시오!” 전장연 활동가들의 피맺힌 절규는 오세훈식 관치와 사회의 무관심에 파묻히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에 전체 인구대비 5.1%인 264만 5000명이 등록 장애인이라고 말하지만, 이 세상에 장애인은 없다. 어떤 학생이 심한 근시로 책을 볼 수 없고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부모는 우선 안경을 맞추어 준다. 안경이 없다면 그 학생은 시력 장애를 겪어야 하지만 안경만 쓰면 책을 보고 진리를 찾는 여정에 오를 수 있고 만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포옹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듯 국가와 사회가 국민의 부족한 점을 제도, 법, 재정, 편의시설로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그들은 장애인으로 호명되고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수억 원에 이르는 명품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도 심한 근시를 앓는 자식에게 안경을 사주지 않는 비정한 어머니처럼,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임에도 이 나라는 후진국 수준의 장애인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전장연이 기획재정부의 주장을 나치의 T4 작전과 비교한 웹자보(인터넷 홍보물)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나치는 장애인 1명에게 드는 사회적 비용이 4인 가구의 생활비와 맞먹는다고 홍보하고는 30만 명의 장애인을 학살하였다. 전장연은 탈시설, 교육권, 이동권, 노동권 등의 장애인 권리예산을 지난해보다 1조 3044억 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는 나치와 비슷한 논리로 이 중 0.8%(106억 원)만 증액하였다. 물가 인상으로 인한 자연증가분만 인정하고 전장연의 요구를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올해에도 장애인은 복권 당첨과 같은 확률로 저상버스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지하철로 이동하다가 그 중 상당수는 휠체어 리프트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죽고, 장애아동들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면 수용시설로 가서 여러 폭력을 당하다가 때로는 죽고, 비장애인보다 9배나 많이 화재로 사망할 것이다. 그 부모들 가운데 몇몇은 감내하고 또 감내하다가 이런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할 것이다. 똑같은 투쟁을 22년이나 반복하느냐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과 정부의 차별로 2001년에 오이도역에서 한 장애인이 리프트 추락으로 사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장애인은 ‘다른 능력을 가진 이’다. 베토벤은 귀가 먹었기에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진리의 진동을 들을 수 있었고, 스티븐 호킹은 근 위축성 측색경화증을 겪었기에 육체를 넘어 정신의 최고 상태에서 우주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평범한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다리가 불편한 이들은 팔심이 엄청 강하고, 시력이 어두운 이들은 촉각이나 청각이 거의 초인적이다. 그들은 비장애인이 갖지 못한 육체나 감각의 탁월함, 선함, 뛰어난 통찰력, 놀라운 상상력을 가졌다. 이제 ‘다른 능력인’으로 호명부터 바꾸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약자에 대한 편애적 사랑과 자비’가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이며 오히려 사회발전도 이끄는 것을 경험하였다. 한 사회의 수준은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대우와 비례한다.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장애인 권리예산을 확보해 주는 것이 문명국으로서 도리다. 아울러 근본적으로 파시즘적이 아니라 민주적인 방식으로 장애인 제로(0)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엄마가 근시 자녀에게 안경을 사주듯, 국가가 다양한 장애에 맞추어 완벽하게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나아가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그들도 진정한 자기실현으로서 노동하도록 그 다른 능력에 따라 맞춤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놀이든 교육이든 일이든 함께 같은 자리에서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어느 날 “우리나라에 신체가 불편한 이는 있어도 장애인 없다”라고 선언한다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추앙받는 나라로 우뚝 설 것이다.
검찰주의자 대통령은 성탄절 전후에 교회와 성당을 번갈아 방문하여 법의 정신과 통한다며 이웃사랑을 강조하였다. 그의 이웃에는 기득권과 개는 있어도 장애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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