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수주 목표치 ‘하향’…‘선택과 집중’ 나선다
경기 침체·금리 인상에 선박 발주 감소 전망
조선업 호황에 이미 ‘초과수주’…수익성 관건
환경 규제에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집중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HD현대의 조선 3사(현대중공업(329180)·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010620))가 새해 수주 목표치를 전년 대비 하향 조정했다.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으로 신규 선박 발주 건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다만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해 조선업 호황으로 목표치를 초과 달성해 수주잔고를 채우고 2~3년 치 일감을 이미 확보해둔 상태다. 이에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선별적 수주를 통해 수익성을 끌어 올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의 조선 3사는 올해 수주 목표를 157억 달러(약 20조원)로 전년(177억 달러) 대비 11%가량 낮춰 잡았다. 시장에서는 이를 보수적인 수치로 보고 있다. 3사의 지난해 실제 수주액은 약 241억 달러(약 30조원)로 목표치의 136%를 초과 달성한 바 있다.
회사별로 살펴보면 △현대중공업 94억 달러 △현대삼호중공업 37억 달러 △현대미포조선 26억 달러로 다른 두 회사는 지난해와 대동소이하나,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해 목표치(47억 달러) 대비 45%, 실제 수주액(87억 달러) 대비 70% 낮춰 잡으며 올해 가장 보수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042660)과 삼성중공업(010140)도 올해 수주 목표를 낮출 것으로 예상한다. 두 회사 역시 지난 2년간 목표치를 초과 달성해 3년 치 이상의 수주잔고를 채워뒀기 때문이다. 충분한 수주잔고와 한정된 슬롯(신조용 도크 예약)에 의해 선가 강세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굳이 선가를 낮춰 수주 확대를 선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략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조선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수주 목표를 높게 설정했다면 경쟁 심화로 선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반기는 해운사들의 충분한 자금 여력과 조선사의 충분한 수주잔고 사이의 힘겨루기 시간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등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한 영향도 있다. 유재선 하나증권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신조 발주량은 지난해 추정치인 7090만총톤수(GT) 대비 소폭 감소한 6580만GT로 예상되는데, 이는 경기침체 우려와 2년간 지속된 신조 발주 호황에 따른 조선소 납기 소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선박 수요가 남아 있어 실제 수주 규모는 목표치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 연구원은 “올해 HD현대의 수주 목표는 다소 하향 제시됐지만 보수적인 목표로 판단된다”며 “액화천연가스(LNG)선의 경우 모잠비크 프로젝트 물량이 포함되지 않았고 컨테이너선도 대형 선사 중심 발주 수요가 올해도 견조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잠비크의 프로젝트란 아프리카 모잠비크 해상 가스전을 개발, 부유식액화설비(FLNG)를 통해 LNG를 생산·판매하는 사업으로 대규모 신규 LNG선 수주가 예고돼 있다. 이는 아직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목표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조선사들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강화 속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가 늘면서 수익성이 높은 선박 위주로 수주하는 전략을 펼칠 전망이다. 정기선 HD현대 대표는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3’ 개막 전인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우리 조선업과 우리 그룹 조선 계열사에는 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한국 조선사들은 지난해 LNG 운반선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여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의 지난해 선박 건조 수주 점유율은 37%로 중국(49%)에 이어 순위로는 2위를 기록했지만, 점유율은 2년 연속 증가했고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량의 58%를 차지하며 시장 지배력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조선사들은 잇단 수주로 일감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인력난이 심화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는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유능한 외국인력 확보, 맞춤형 인력양성 등을 추진해 인력난을 완화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한국 조선산업의 초격차 유지를 위해 올해 핵심 기자재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에 1300억원을 투입하고 암모니아·전기추진 시스템과 LNG 저장 시스템(화물창) 상용화 등도 지원할 방침이다.
김은경 (abcd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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