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에 푹빠진 해외 갤러리, 韓작가 직접 키운다
첫 韓작가 3인 그룹전
외국계 화랑 오면 다 죽는다?
전통美 살린 'K아트 위상' 커지자
앞다퉈 韓작가 발굴해 세계 소개
제이디 차·한선우·정희민 선정
제이디 차, 무당옷 입은 여인 그림
오색 천 조각보를 액자처럼 감싸
죽음·삶 경계…무속신앙에 빗대
한선우·정희민 젊은 작가도 소개
지금까지 외국계 갤러리의 ‘한국 상륙’은 국내 갤러리에 ‘비보’나 다름없었다. 국제적 영업 기반을 갖춘 해외 갤러리가 세계 유명 작가들을 앞세워 국내 미술 컬렉터를 ‘싹쓸이’해 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외국계 갤러리가 많아지면 한국 미술시장이 ‘서양 미술의 텃밭’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외국계 갤러리의 움직임은 국내 미술계의 걱정이 상당 부분 ‘기우’에 그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해외 전속 작가를 한국에 소개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신진 작가를 발굴해 세계 무대로 진출시키는 ‘교두보’ 역할까지 자처하면서다. 한국 작가들의 실력이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데다 한국 전통의 미(美)를 살린 ‘K아트’의 위상이 커지자 지구촌 컬렉터에 한국 미술을 소개하려는 유인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韓 작가로 전시회 여는 외국 갤러리
유럽 명문 갤러리인 타데우스로팍 서울은 새해 첫 전시로 한국인 작가 두 명(정희민·한선우),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제이디 차) 등 세 명의 그룹전 ‘지금 우리의 신화’를 택했다. 지난해 서울 한남동에서 아시아 처음으로 지점을 낸 이후 한국 작가로만 구성한 첫 번째 전시다. 황규진 타데우스로팍 디렉터는 “지금까지는 소속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전시였다면, 이번엔 한국 로컬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의 신화’ 작가들은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의 창업주인 타데우스 로팍 대표가 2년 가까이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선정했다. 로팍 대표는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계 무대에서도 먹힐 만한 파격적인 젊은 작가들 위주로 선정했다”고 했다.
작품의 프레임을 오색 조각보로 장식한 제이디 차(39)가 로팍 대표가 이야기한 대표적 사례다. 제이디 차는 이번 전시를 위해 소라 껍데기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무당 옷을 입은 자신의 초상화인 ‘귀향’(2022)을 선보였다. 오묘한 분위기의 이 그림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 오색 천이다. 그는 현재 영국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도 비슷한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제이디 차는 “외국 관람객들은 이 작품을 보고 몬드리안의 격자무늬를 떠올리지만, 사실 한국의 장인들이 만든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제이디 차는 아시안 이민 2세대로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도 한국적 소재로 풀어냈다. 그는 “한국과 캐나다, 그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했던 경험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무당에 빗대 표현했다”고 했다. 그가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들은 ‘마고할미 설화’도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서양 사회에선 전통적인 약자로 여겨지던 여성 노인을 창조신처럼 묘사한 것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과 세계를 잇는 ‘창구’로
포토샵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한 뒤 회화로 옮겨 작업하는 한선우 작가(29)의 작품도 독특하다. 그는 개방성과 폐쇄성을 모두 갖고 있는 디지털 사회의 모순을 성에 갇힌 채 긴 머리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라푼젤에 빗대 표현했다. 정희민 작가(35)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헤라의 저주를 받아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할 수밖에 없게 된 님프 에코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현대사회를 비판했다. 타데우스로팍 관계자는 “다음달 25일까지 서울에서 전시를 연 뒤 세계 곳곳에 있는 타데우스로팍 갤러리 분점에서 이들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외국계 갤러리도 ‘한국 작가 키우기’에 한창이다. 지난해 초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한 세계 정상급 갤러리 리만머핀은 매년 한국 작가들로만 구성된 전시를 1회 이상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엔 한국 수묵 추상의 대가인 고(故) 서세옥 화백과 그의 두 아들인 서도호·서을호 작가, 손자들의 작품까지 정리한 ‘삼세대(三世代)’전을 열고 있다.
외국계 갤러리 중 처음으로 서울에 2호점을 낸 페로탕은 지난달부터 중국 상하이와 홍콩 분점에서 이배·심문섭 등 한국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청담점에 둥지를 튼 아시아 최대 갤러리 탕컨템포러리아트도 한국 작가를 발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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