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 | OTT 시대, 영화 창작자 권리 존중해 지속 가능 생태계 만들어야

이동연 2023. 1. 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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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 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현 충청남도 도정위원회 문화예술 분과 위원, 전 경기아트센터 이사, 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비전 2030’ 추진 단장

“한국 영화로 프랑스에서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게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지난해 2월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한 ‘디렉터스컷 어워즈’ 시상식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아가씨’가 프랑스에서 상영되면서 발생한 저작권료를 보상받았기 때문이다. 감동의 순간은 ‘공돈’이 아니라 ‘권리’에 있다. 영화 연출가로서 창작자의 수고와 노력이 해외에서 ‘지속 가능한 저작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감동의 순간은 아쉽게도 아직 없다. 현행 저작권법 100조 1항은 영상 저작물의 유통 편의를 위해 저작자가 영상 저작물 이용을 위해 필요한 권리를 모두 제작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 말하자면 영화가 연출자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 영화에 대한 모든 유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제작자에게 양도되는 것이다. 제작자가 어떤 방식으로 유통하든, 얼마나 수익을 벌어들이든 연출자, 즉 영화감독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콘텐츠 인접 장르인 음악의 경우 작곡가, 작사가인 저작권자와 가창자 연주자인 저작 인접권자는 노래방, 음원, 방송, 콘서트, 상업 이벤트 등 추가로 발생한 수익에 대해 저작권료를 분배받고 있다. 음악 저작권자는 되고, 영화 저작권자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첫 번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영상 저작물의 유통 권한을 제작자에게 위임한 저작권법 100조 1항 때문이다. 법 조항만 놓고 보면 영상물의 모든 저작권은 제작자가 가져가는 것으로 돼 있다. 그래서 특히 IPTV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등 2차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제작자에게 귀속된다. 그런데 음악 저작권은 다르다. 음악의 저작권은 오프라인 음악 저작권과 온라인 음원 저작권으로 구분된다. 두 저작권을 신탁·관리하는 단체도 다르다. 오프라인 음악 저작권은 곡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한 사람에게 귀속되고, 디지털 음원 저작권은 음악 저작권자 외에 음원을 제작한 기획사도 함께 권리를 갖는다. 예를 들어 노래방에서 발생하는 수익에서 음악 저작권료는 작곡, 작사, 가창, 실연자에게 분배되나 음반을 제작한 기획사가 분배받는 것은 없다. 디지털 음원 유통의 경우 음원 저작권료는 음원을 제작한 기획사가 저작 인접권자로서 가장 많이 분배받고, 저작권자들에게도 비록 적은 비율이지만 분배된다. 그런데 현행 저작권법 100조 1항으로 인해 영상 저작물의 이용 권리는 제작사가 양도받게 돼 있다. 영화감독이 연출 계약을 할 때 극적으로 영상물의 2차 저작 권리를 추가하지 않는 이상 모든 저작 권리에 따른 수익은 제작사가 갖는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 제작 과정은 복잡하고 유통 과정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음악과 달리 영화는 창작에 참여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출연 배우뿐 아니라 연출, 조연출, 시나리오 작가, 촬영 및 조명 소품 등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여기에 후반 작업 참여자까지 합치면 수백 명이다. 그런데 ‘올드 미디어’ 시대에 영화가 유통되는 플랫폼은 극장, 비디오 가게, 공중파 TV 정도였다. 영화 창작에 관여하는 창작자는 많고, 영화를 보는 플랫폼은 단순하니 저작권 이용의 편의를 위해 현행 저작권법은 제작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뉴 미디어 시대에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이행하면서 OTT 시장이 급성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최근 5년간 한국 영화 산업 주요 부문별 시장 점유율 비중’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극장 대 OTT 시장 매출액은 15억달러(약 1조8900억원) 대 5억달러(약 6300억원)로 극장이 세 배 정도 많았지만, 2019~2020년 두 분야의 수입이 역전됐고, 2021년에는 오히려 OTT 수입이 5억달러 더 많았다. 물론 코로나19 영향이 컸지만, OTT 시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OTT 시장이 커질수록 총수익에서 영화의 창작자 권리는 줄어들고, 제작자와 배급사의 권리는 늘어난다. 적어도 창작자 권리의 관점에서 현행 저작권법 100조 1항은 디지털 뉴 미디어 플랫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 

세 번째 이유는 영화 산업계 내부에 있다. 특히 창작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영화감독들이 영상물의 유통 보상권 청구를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 관철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게 조직화됐는지 잘 모르겠다. 가령 음악 산업계의 경우 디지털 음원 플랫폼이 음악 유통의 대세가 됐을 때, 음악 창작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투쟁을 벌였다. 유명 작곡가들뿐 아니라, 메이저 연예기획사의 음원 유통 그리고 인디 음악인들까지 똘똘 뭉쳐서 2012년에 ‘스톱 덤핑 뮤직(Stop Dumping Music)’이라는 캠페인을 벌여 이동통신사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 결과 현재 음원 유통 수익에서 음악 창작자와 음원 인접권자들의 분배 비율이 높아질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시 음원 저작권의 분배 비율을 조율하는 조정위원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감독을 비롯해 영화 창작물의 저작 권리를 주장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음악 산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저작권의 수익과 분배 구조는 처음부터 정해진 불변의 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저작권의 분배 구조는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자와 그것을 유통하는 자 사이에 조율하고 합의한 내용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한쪽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부당함을 공론화해 저작권의 분배를 조정할 수 있다. 영화 창작자들이 자신의 ‘피, 땀, 눈물’에 비해 돌아오는 경제적 권리가 부당하다고 인식하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론화와 법 개정 운동에 나서야 한다. 영화 제작사나 OTT 입장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난색을 표명한다. 첫째는 영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당사자가 영화감독 외에 너무나 많아서 계약 과정과 보상 체계가 영화 제작 시스템을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둘째는 창작자에 대한 영상물의 보상 청구권을 인정할 경우 적자에 시달리는 영화 제작 시장이 도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 산업 시장은 OTT로 대변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연출료나 시나리오 고료만 받고 자신의 권리를 누군가에게 모두 양도할 수밖에 없다면, 그게 과연 타당하고 정당한 거래일까. 유럽은 최근 ‘유럽연합(EU) 디지털 단일 시장 저작권 지침’을 마련해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획득한 수익에 대한 대가를 저작자에게 분배하는 규정을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나서서 영화 및 영상물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영화, 미디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 단체인 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AVACI) 정기총회가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주최로 열려 ‘영상물 저작권 공정 보상권 법제화 포럼’을 개최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이 영화 산업의 유통 시장을 지배할 경우 총수익 중 창작자가 적당한 비율에 맞게 분배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영화 산업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언제 연출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언제 내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될지 모른다. 영화 창작자의 생존율은 다른 인접 장르와 비교할 때, 현저하게 낮다. 창작자 없는 영화 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 영상물의 보상 청구권이 인정돼 그 돈으로 창작자들의 생태계가 잘 유지될 수 있다면 영화 산업의 미래를 위해 그것만큼 지혜로운 상생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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