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윈은 도플갱어가 아니다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단어는 외모가 똑같이 닮아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어원은 독일어로 둘을 뜻하고 영어의 더블(double)과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인 ‘도펠(doppell)’과 걸어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갱어(gänger)’ 가 합쳐진 것이다. 독일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양(+)의 세계라면 똑같은 형태의 음(-)의 세계가 존재하며, 그 세계에 살고 있는 도플갱어와 만나면 음과 양이 합해져 죽거나 사라지게 된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도플갱어는 좋은 뜻보다는 불길한 상징처럼 쓰였고 여러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데도 매우 흡사해 보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면서 디지털로 도플갱어를 만드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 주목을 받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미국 미시간대 마이클 그리브스(Michael Grieves)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현실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쌍둥이를 디지털화해 컴퓨터에 만드는 것이다. 실제 사물이나 제조 과정을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 관련 빅데이터를 축적한 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한다. 예를 들면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을 이용한 생산 등은 현실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디지털 트윈에 축적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처 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도록 만들어진다.
디지털 트윈의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해 활용한 것은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이다. NASA에서는 디지털 트윈 초기 모형을 우주선 모형으로 궤도를 찾아가는 문제에 활용했고 이후에는 달 착륙 시 우주비행사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해결책을 찾는 데 이용했다. 실제로 아폴로 13호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지상의 엔지니어들과 데이터를 교류하면서 문제의 해법을 찾고 무사히 미션을 마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트윈은 경제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핵심 기술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술 발달로 비교적 낮은 가격에 사물인터넷(IoT)이 사물과 컴퓨터를 연결하게 되었고 빅데이터 분석 기술들이 발달해 실제 생산 과정과 제품 개발에 활용하기가 이전보다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윈은 단순한 시뮬레이션과 달리 빅데이터를 활용해 스스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자율적 역량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다른 미래 산업의 주요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디지털 트윈의 중요한 특성이다. 하나의 기계나 사물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연결한 공장 전체가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건물이나 도시의 효율성 개선과 합리적 운영을 위한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처럼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Gartner)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디지털 트윈을 10대 전략 기술로 선정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정 과제로 ‘디지털 트윈 조기 완성’을 제시하자 정책 개발 및 결정 과정 디지털화가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 정부 플랫폼을 구축해 정부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했고, 새해 예산에도 이런 계획이 반영됐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22년 63개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정부 효율성은 중간보다 낮은 36위였다. 정부의 디지털 트윈이 하루빨리 구축돼 정부 효율성 순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민간의 효율성을 끌어내리지 않도록 데이터 기반 정책 결정 시스템이 조속히 도입되기를 바란다. 디지털 트윈은 도플갱어와 달리 미래를 더 밝게 만들 기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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