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21> 경남 거제] 거제로 떠나는 겨울 미식 여행
찬 바람이 부는 이즈음이면 전국의 포구는 미식가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겨울이면 한껏 기름기가 오르는 생선이며 조개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걸음으로 유명 식당 문턱이 닳는다.
도루묵이며 숭어 등 겨울이면 맛이 드는 여러 해산물 중에서도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단연 굴과 대구가 아닐까. 향긋한 굴구이와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대구탕 한 그릇이면 코끝을 얼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경남 거제는 굴과 대구 등 싱싱한 겨울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겨울 별미 여행지다. 여행의 시작은 거제면 내간리에 자리한 굴구이집이다. 굴 하면 이웃한 통영을 떠올리지만, 거제에서도 통영 못지않게 굴이 많이 생산된다. 통영에서 신거제대교를 넘어 호곡, 녹산, 법동 등지를 지나 거제면 내간리까지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해안가에 굴 양식을 위한 지주들이 끝 간 데 없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제와 통영에서 키우는 굴은 수하식으로 알이 크기 때문에 석화와 구이용으로 좋다. 내간리 해안가에 굴구이를 내는 집이 모여있다.
굴구이를 주문하면 맛보기로 생굴이 나오고 곧이어 굴튀김과 굴무침이 가득 담긴 접시도 놓인다. 고추, 파와 함께 바삭하게 튀긴 굴튀김은 매콤한 맛이 일품. 각종 채소와 함께 버무려진 굴무침도 매우면서도 새콤한 맛으로 젓가락질을 바쁘게 만든다.
굴무침과 굴튀김을 다 먹을 때면 커다란 철판 하나가 불 위에 올려진다. 뚜껑을 열어보면 껍질을 까지 않은 생굴이 가득 담겨있다. 가장자리에 검은 테두리가 선명한데, 이는 굴이 싱싱하다는 증거기도 하다. 거제 굴구이는 구우면서 동시에 찌는 방식. 다 익기까지는 5분 정도가 걸리는데, 장갑을 끼고 칼로 껍질을 까서 먹는다.
굴 껍데기를 까보면 육즙이 가득 고여 있다. 특유의 진한 굴 향도 후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초장에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 짭조름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굴 자체에 간이 되어 있어 양념을 찍지 않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
겨울 대표 생선 대구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속담도 있듯, 겨울은 대구에 맛이 제대로 드는 때다. 진해만에는 겨울이면 전국 최대 규모의 대구 어장이 형성된다. 1980년대 한때 진해만을 가득 메웠던 대구가 사라지면서 ‘금대구’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거제수협이 대구알 방류 사업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외포항으로 대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외포항에는 대구 요리를 내는 식당 10여 곳이 늘어서 있다. 대구는 말 그대로 입이 커서 대구(大口)다. 머리가 크기 때문에 대두어(大頭魚)라고도 불린다. 머리가 큰 까닭에 볼때기 살도 푸짐하다. 대구볼찜이 나올 수 있는 까닭도 큰 머리에서 비롯한다.
대구는 탕, 찜, 조림, 부침, 젓갈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버릴 부위가 없어 ‘바다의 소’로도 불린다. 대구로 만든 다양한 음식 중에서 겨울에 먹으라면 단연 탕이다. 생대구의 머리와 몸통, 고니, 알을 넣고 미나리, 다진 마늘을 푸짐하게 넣어 끓이면 꼭 곰탕처럼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맛은 담백하고 시원하고 개운하다. 구수한 맛도 끝에 남는다. 대구탕은 둥그런 원탁에 넓적한 냄비를 올리고 여러 사람과 어깨를 맞부딪혀가며 먹어야 제맛이다. 뒷자리 손님과 등을 툭툭 부딪히며 먹어도 된다. 넥타이 느슨하게 풀어 헤친 채 미나리와 콩나물을 추가해가며 먹다 보면 겨울밤이 어느새 깊어져 간다.
살짝 말린 대구도 맛있다. 내장과 아가미, 알과 이리 등을 제거하고 해풍에 3~5일 말린 대구는 수분이 쏙 빠져 더욱 차진 맛을 낸다. 말린 것으로 탕을 끓이면 더 뽀얗고 구수한 맛의 국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상인들의 귀띔이다. 외포항 곳곳에서는 대구를 말려 건대구로 만드는 작업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부둣가 햇볕이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내장을 빼고 나무 꼬치로 꿴 대구가 널려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 감상하는 남해의 비경
거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꼽으라면 아마도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일 것이다. 해금강 가는 갈곶리 도로 오른편에 신선대가, 왼편에 바람의 언덕이 각각 자리한다. 신선대는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다고 할 정도로 해안 경관이 절경이다.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와 기암괴석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바람의 언덕은 갈곶리 도장포마을 북쪽 해안에 있는 언덕으로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분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었다. 바다와 풍차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경치가 매력적이다.
학동에 있는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도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흑진주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검은 몽돌이 덮인 몽돌밭 해변이 1.2㎞에 걸쳐 펼쳐져 있다. 바닷물이 밀려들고 나갈 때마다 몽돌밭에서는 ‘자글자글’ 하는 소리가 나는데, 우리나라 자연 소리 100선에 선정될 만큼 아름답고 감미롭다. 새하얀 포말을 뒤집어쓴 몽돌은 흑진주처럼 반짝인다. 그 풍광을 가슴에 담기 위해 해변으로 나선 연인들은 몽돌에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즐기는 바다 드라이브도 거제 여행의 낭만을 더해준다. 특히 여차~홍포 간 해안도로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푸른 바다와 정다운 포구마을,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은 자꾸만 차를 세우게 만든다.
여행수첩
먹거리 굴구이는 거제면에 자리한 원조거제굴구이가 원조 집이다. 거제의 굴구이 집 대부분은 굴구이, 굴 죽, 굴국밥 등 다양한 굴 요리를 파는데, 굴구이 세트를 주문하면 굴구이와 굴튀김을 비롯한 다양한 굴 요리를 코스로 먹을 수 있다. 외포항에 자리한 외포효진횟집과 양지바위횟집 등에서 대구탕을 맛볼 수 있다. 장승포에 자리한 항만식당은 해물뚝배기로 유명하다.
한국전쟁의 아픔이 생생한 곳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되돌아보며 전쟁의 교훈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거제포로수용소는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면서 급속하게 늘어난 포로를 수용할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만들었다. 북한군이 남침에 사용한 소련제 T-34 탱크를 확대해 지은 탱크 전시관을 지나면 거제포로수용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디오라마관이 있는데 이곳에 전시된 모형들을 바라보다 보면 거제포로수용소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디오라마관을 지나면 실제로 사용됐던 경비대장 집무실, 경비대 막사, PX, 무도회장 등 건물 일부가 남아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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