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자의적 수의계약·내부 갑질 적발돼

세종=손덕호 기자 2023. 1. 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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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윤범모 관장, 부서장 갑질 알고도
특별한 조치 안 해 조직 전반에 불신 팽배”
2019년 임명…文정부서 말인 작년 2월 연임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 이하 ‘미술관’)이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등 전시 4건에서 조명 구입과 설치 용역을 자의적으로 수의계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술작품을 매입할 때에도 자의적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내렸고, 국고에 반납해야 하는 수익금을 직원들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 개막 첫날인 2021년 7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사전예약자들이 관람을 하고 있다. /조선DB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소속 기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조직 관리와 업무 전반에 대해 특정감사를 실시한 결과 16건의 위법·부당한 업무처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미술관에 국고 환수와 경구·주의를 요구하거나,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문체부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미술관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2013년 설립된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이사장 윤범모, 이하 ‘문화재단’)은 지난해 9월 뮤지엄숍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 수입 약 3196만 원을 회계연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직원 격려금으로 임의로 나눠줬다. 이 재단은 미술관 내 편의시설을 위탁 운영하며 1년 단위로 정산하고 수입이 지출을 초과하는 경우 그 차액을 국고에 납입해야 하는데, 규정을 어긴 것이다.

또 문화재단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체결한 3000만원 이상 계약 21건 중 20건을 수의계약으로 맺었다.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조명 구입 및 설치 용역을 포함한 4건(계약금액 4억720만원)도 수의 계약을 했다. 재단은 자체 재무회계규정에 따라 일반 경쟁을 원칙으로 하고 제한적으로 수의 계약을 맺도록 하고 있다.

미술관은 일반구입 수집작품의 제안권자인 내부 학예직과 외부 전문가를 대폭 축소했다. 작품수집규정에 따르면 일반구입 수집작품의 제안권자는 관장과 학예직 및 관장이 선정하는 50인 이내의 외부 전문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50명으로 운영되던 외부 전문가를 2021년부터 11명으로 축소했다.

경매 구입 시에도 학예직 7~8명에게만 카카오톡 등을 통해 경매 일정과 작품 안내가 이뤄져 작품 구입 제안을 일부 소수 학예직 직원이 독점했다. 또 경매구입 시 제안자 응찰보고서로 가치평가위원회를 진행해야 하지만, 제안된 115건 중 40건의 응찰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매를 진행해 16건을 최종 낙찰받았다.

테레시타 페르난데즈의 '어두운 땅(우주)'.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작품 구입 가격도 전문가 의견과 다르게 자의적으로 조정했다.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치평가위원회와 가격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일반구입을 결정한 279점 중 26점의 가격이 일관된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조정됐다.

테레시타 페르난데즈의 ‘어두운 땅(우주)’ 등 7점은 가치평가위원회 의견과 달리 최고 5000만원까지 상향 조정됐다. 테레시타 페르난데즈는 서구 식민주의, 후기 식민주의 시대의 권력 충돌 등 다양한 문화적·역사적 주제를 함축적으로 다룬 풍경화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일본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미야지마 다쓰오(宮島達男)의 ‘카운터 갭’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1000만원을 하향 조정했다.

작품 수집을 최종 결정하는 작품수집심의위원회도 제척·기피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객관적 기준 없이 운영됐다. 작품 구입을 제안한 직원이 해당 심의에 참여하거나, 작품 수집 담당 부서장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할 가격자문위원회에 부당하게 관여하기도 했다.

작품 관리도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3년간의 보존·복원을 완료한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관련해 부서 간 협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시·관리에 필요한 전시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작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작품의 일부인 모니터가 고장 난 채 전시되기도 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해 8월 29일 발생한 미술관 유튜브 채널 해킹 사건을 문체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처 내 유사한 해킹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게 문체부 설명이다.

2022년 10월 18일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문화체육관광부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조선DB

또 윤 관장은 일부 부서장들이 직원에게 비인격적인 행위를 하는 이른바 ‘갑질’을 인지하고도 방관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부서장 A씨는 다수 직원에게 “나가서 딴소리하면 죽여” 등의 폭언을 했다. B씨는 회식 자리에서 부서 직원의 외모에 대해 “화장을 좀 해라” “수준이 초등학생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 문체부는 “윤 관장은 이를 인지하고도 특별한 조치 없이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 조직 전반에 불신이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갑질과 부당 인사 등 미술관 운영과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자 지난해 10월 24일부터 11월 4일까지 특정감사를 진행했다. 문체부는 미술관에 시정 1건, 경고 2건, 주의 6건, 통보 6건, 현지조치 1건 등 16건을 통보하고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윤 관장은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미술 비평가다. 가천대 미술·디자인대 회화과 교수를 지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로, 대표적 민중미술계열 인사로 꼽힌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함께 ‘계간 미술’ 기자로도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됐고, 지난해 2월 연임됐다. 임기는 2025년까지다. 미술관 노조는 지난해 초 ‘갑질’과 부당 인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윤 관장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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