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묵은 6-3-3학제 …'산업화시대 교육' 쳇바퀴 갇힌 아이들

한상헌 기자(aries@mk.co.kr) 2023. 1. 9. 17: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류인재 못키우는 교육
과학영재도 취업희망 학생도
12년간 일제히 같은 내용 배워
맞춤교육·다양한 진로 필요
아이들 사춘기 빨라졌는데
8세·13세가 한 학교서 공부
4차산업혁명시대 경쟁력 저하
초당적인 국가교육위 주도로
범국민적 합의 이끌어내야

◆ 가자! G5 경제강국 ◆

1951년 만들어진 지금의 교육 학제는 70여 년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새로운 학기를 3월에 시작하고, 초등학교 6년·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대학교 4년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의 발달 속도가 빠르고, 노동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학제를 고집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낡은 틀에 갇혀선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류 인재를 키워내고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장기적으로 취학연령을 낮춤으로써 입직연령과 결혼·출산연령 등까지 전체적으로 앞당기거나, 의무교육을 빨리 시작해 교육과 돌봄의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영재들은 빨리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한다든지, 직업 전선에 뛰어들 학생들에게도 좀 더 단기간의 교육과정을 적용해 사회 진출 연령을 낮추는 식의 유연하고 개인에게 맞춘 학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학제가 오랜 시간 큰 변화 없이 이어진 만큼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했는데 1950년대 학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6-3-3-4의 칸막이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우선적으로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은 중학교 교육으로 이전해 '5-4(초-중)' 방식의 교육 체계를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6-3-3-4제'가 만들어진 이후에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지식적인 발달 수준도 올라가면서 초등학교 입학연령 변경 논의도 나오고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는 "중학생들이 영국 등처럼 직업계 학교나 대입 예비학교 등으로 진학하도록 해 대학입시에 모두가 매달리는 것을 막게끔 고등학교 학제를 바꿔보자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송 명예교수는 "초등학교를 5년만 하고 전반적으로 교육과정 16년을 14~15년 정도로 단축해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며 "다만, 학제 개편을 통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는 것에 대해선 지난번에 문제점이 많이 드러나 당장은 쉽지 않고, 좀 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제와 교사양성 임용제, 학생 수용제 등의 학제 체제가 각각 다르다는 점을 비판하며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사양성 임용제는 초등교사와 중등교사로 나뉜 6-6제이고, 학생을 수용하는 제도가 6-3-3제"라며 "또 교육과정제는 9-3제이고, 이러한 3자 간의 미스매치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현대사회는 아이들 성장 과정이 빠르지만 우리나라는 군대 등으로 입직연령이 늦은 편이고, 공직선거법에는 18세부터 출마할 수 있으니까 한 해 정도 일찍 졸업해야 한다"며 "유치원이 3년 있기 때문에 가장 긴 학제인 초등학교를 1년 정도 줄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학교를 통합하는 방안도 나온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교육제도 자체가 경직돼 있다"며 "경직성에서 일어나는 게 교사 문제로 학교 규모가 작아지는데 전체 규모를 키우기 위한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대안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통합하고,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를 묶는 '6-6제'를 제안했다.

학제 개편 필요성 주장과 함께, 3월 학기제가 국제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육 전문가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9월 개학에 맞추느라 6개월 정도의 공백을 감수해야 한다"며 "대부분 나라가 9월 학기제를 시행하는 것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행 학제의 장점을 언급하며 9월 학기 도입에 대해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금 시스템(3월 학기제)이 인간의 생체주기에 맞는다"며 "유럽 등 외국에서는 이런 한국형 학제가 더 좋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제 개편 등을 중장기적으로 비전을 갖고, 하지만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선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남기 교수는 "현행법상 학제는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 사항인데, 개편 필요성을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는 절차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여러 이해관계자와 많은 국민을 참여시켜 미래형 학제 체제를 장기간에 걸쳐서 만들어내고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 분야에 국민적인 협의 과정이 들어가게 돼 정권이 바뀌더라도 입맛에 따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대통령실이나 교육부 주도로 방향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추진해 위원회를 거수기 역할로 만들어놓을 경우 야당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법 개정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상헌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