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의료현장에는 '사람'이 있다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멈췄다. 대학병원조차 입원이나 응급 진료를 중단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도 17% 밑으로 떨어졌다. 비단 여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35년에는 의사 2만7000여 명이 부족할 거라고 전망한다. 간호사 수도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4.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명)의 절반 수준이다. 거기에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전반적인 의료인력 부족이 드러났다.
필자가 일하는 연세대 의료원도 같은 고민 중이다. 국내 최대 규모 의료기관 중 하나로 산하 병원과 교육, 연구기관 직원이 약 1만4000명에 직종도 60개가 넘는다. 의료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협력하며 운영되는 고도의 인력집약 분야로 숙련된 의료인력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채용공고는 연일 올라오고, 전공의 모집 시기면 그 긴장감이 극에 달할 지경이다. 매년 의사 3000여 명, 간호사 2만여 명이 배출되고 있다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정말 대학 정원을 늘려 많은 의료인력을 배출시키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의료현장에서 체감하는 문제는 '인력 부족'보다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기 과와 비인기 과 간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의료 불균형'이다. 거기에 야간 근무와 같은 소위 낮은 '워라밸'을 피하는 세태 속에 단순 숫자 늘림이 해법은 아닌 것 같다. 의료인에게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의 정책과 사회 기조 속에 젊은 의료인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고난도 고위험 임상과 지원을 기피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위험을 감당하기보다는 좋은 인프라스트럭처 속에서 안전하고 자기 계발의 기회가 많은 서울 지역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종합병원 근처에 원룸을 구하고, 출산을 위해 지역을 건너야 하는 새로운 '의료 노마드'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도 의료인력의 균형을 맞추고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왔고 여러 대안이 제시돼왔다. 하지만 적절한 동기부여나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논리나 정치적 논쟁보다는 좀 더 눈높이를 '사람'에게 맞춰야 할 것이다. 정부, 의료인, 그리고 병원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으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의료현장의 '사람'을 이해하고 의견을 수용해야 국민의 생명과 건강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도 구습을 버리고 자유로운 소통 속에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자도 조직 내에 인재경영실을 신설해 '컬처보드'와 같은 MZ세대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고 발전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러 분야와 직종이 모여 결과를 창출하는 의료이기에 조화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서로의 분야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역량을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의료의 질'이 향상되고, 나아가 '국민의 건강'으로 이어질 것이다.
[윤동섭 연세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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