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 2곳에 화장장도 달라'… 포항 벽지마을, 혐오시설 유치열기 '후끈'
초고령화로 사라질 위기 처하자
市 음식물처리시설 공모에 신청
매립·소각장에 화장장 일괄 희망
죽장면엔 벌써 반대 현수막 붙어
市 "주민 수용성 중요...신중 결정"
경북 포항의 대표적 청청지역이자 친환경농업관광지로 유명한 죽장면.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 침곡리마을 주민 35명이 다른 지역에서 혐오시설로 여기는 음식물폐기물 바이오가스화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주민들은 포항시가 님비(Not In My Back Yard, 사회 필수시설이지만 기피시설은 내 마을엔 안 된다)현상으로 몇 년째 부지를 구하지 못한 화장장(추모공원)과 폐기물 매립장, 소각장(포항 에코빌리지)까지 일괄 유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죽장면 내 다른 지역 주민들은 반대현수막을 내거는 등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6일 찾은 포항 침곡리 마을은 산간벽지로 불리는 죽장면에서도 첩첩 산중에 위치했다. 마을 진입로는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고, 마을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2㎞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자 휴대전화 신호도 뚝 끊겼다. ‘바늘처럼 뾰족한 골짜기’라는 뜻의 지명처럼 해발 725.7m의 침곡산이 병풍처럼 에워싸며 평지가 거의 없고 계곡과 같이 좁고 기다랗게 생긴 마을이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주민은 “길이 위험할 정도로 좁고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아 비가 조금만 내려도 마을이 고립된다”며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선거철에는 길을 넓혀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유권자 수가 적어서인지 늘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죽하면 쓰레기장과 화장장이라도 유치하겠다고 하겠냐"며 “이대로 가다간 마을 발전은커녕 고사하듯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에 유치 청원서에 서명했다”고 덧붙였다.
죽장지역은 포항에서도 도심에서 차로 40분을 달려야 다다를 정도로 산간 오지로꼽힌다. 인구 수가 2,700여명으로 29개 포항지역 읍면동 가운데 가장 적다. 침곡리는 전체 주민 수가 35명에 불과할 정도로 죽장면에서도 가장 적고, 이마저도 80대 이상 초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한 때 50가구에 달했던 가구도 현재 21가구에 불과하다.
침곡리 주민들은 제출한 청원서대로 음식물폐기물 바이오가스화시설뿐 아니라, 포항에코빌리지와 추모공원까지 반드시 일괄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성태 침곡리 이장은 “시가 이번에 음식물폐기물 처리장 부지만 공모해 신청 서류를 넣었지만, 하나만 안 되고 3개가 몽땅 들어오거나 최소 2개는 들어와야 한다”며 “2개 이상 들어와야 지원금도 많이 받을 수 있고 마을 전체가 골고루 보상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침곡리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 전체 면적은 약 860만㎡이지만, 지형이 좁고 험준해 가용면적은 200만㎡정도 된다. 주민들이 희망하는 음식물폐기물 처리장(1만2,000㎡)과 에코빌리지(60만~130만㎡), 추모공원(33만㎡)을 합친 면적과 맞먹는다.
침곡리 마을 주민들은 죽장지역 전체 23개 마을 이장들로 구성된 죽장면이장협의회 동의서도 받아 시에 제출했지만, 이미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죽장면 주요 교차로 등 지역 곳곳에는 ‘청정지역 죽장면에 쓰레기에다 화장장이 웬말이냐’, ‘죽장면민 똘똘뭉쳐 혐오시설 결사반대’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죽장면행정복지센터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침곡리 주민들은 쓰레기장과 화장장을 유치해 보상받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다른 마을 주민들은 혐오시설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며 "특별지원금이 나온다고 해도 이제 청정지역 죽장은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는데 찬성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시는 이달 중 주민대표와 전문가, 시의원들로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한 뒤, 6월까지 지역 여건과 환경, 경제성 등 입지 타당성을 면밀히 따져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음식물폐기물 바이오가스화시설 공모에는 침곡리를 포함해 포항 흥해읍 흥안리 등 5개 지역이 신청했다. 최종 입지로 선정된 지역은 주민 편익시설과 지원기금 등 20년간 최대 256억 원을 지원받게 된다.
박상근 포항시 자원순환과장은 “음식물폐기물 처리장이 워낙 기피시설로 인식돼 해당 지역 주민의 유치 의사가 매우 중요하다”며 “경제성과 환경적인 여건도 배제할 수 없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입지를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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