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기업형 벤처캐피털이 이름값 하려면
스타트업 키우겠다던 CVC
외부차입·출자 한도 규제로
도입 1년 지났지만 9개뿐
국내 산업자본 투자길 막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벤처투자 한파가 지속될 전망이다. 유니콘의 자리를 넘보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타트업 상당수가 상장을 포기하거나 투자유치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원 및 사업부 매각·축소를 발표하며 구조조정에 돌입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3년도 모태펀드 예산이 삭감되어 정부 자금에 기댈 수도 없다.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거론하면서 위기 때 투자해야 수익률이 더 높다며 투자 활성화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시장이 메마른 지금,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결국 정부와 스타트업 업계는 해외 VC 투자유치에서 답을 찾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사우디아라비아 모태펀드 운용사인 SVC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후속 투자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해외 자본의 국내 투자는 당연히 독려해야 하지만 국내 VC들이 규모가 작거나 자금 사정이 어려워 시리즈 C 이상의 후속 투자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그런데 국내 자본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전 세계 경제 규모 10위의 국가에서 자본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국내 산업자본을 투자시장으로 연결하는 밸브를 막아 놓은 규제, 대표적으로 반쪽짜리 CVC(기업형 벤처캐피털)만 허용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CVC의 외부 자금 차입은 자기자본금의 200% 이내로 제한되며, 펀드를 조성할 때도 40% 이내에서만 외부 자금 출자를 받을 수 있다. CVC는 애초에 모험자본에 해당되는데 리스크를 감수할 수 없도록 꽁꽁 싸맨 것이다. 이에 CVC 상당수가 자금을 모집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업의 매출을 일부 떼어서 투자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CVC를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는 9개에 불과하다. 조성된 총자금 규모 역시 1511억원에 그친다. 기업의 막강한 자금력을 스타트업 투자로 이끌겠다는 도입 취지도 무색해졌다.
반면 해외에서는 CVC가 벤처 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미국에서 CVC 투자금액은 869억달러(한화로 110조원 규모)로 전년도인 2020년의 405억달러에서 2배 이상 증가했고, 이는 미국 전체 VC 투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렇게 CVC가 투자시장을 주도하는 이유는 투자성과가 재무와 기업혁신 양 측면에서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글의 경우 구글벤처스를 비롯한 3개의 CVC를 운영하며 수백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영상 데이트 사이트였던 유튜브의 기업가치가 구글이 2006년 2조2000억원에 인수한 이후 2020년 200조원을 돌파했다는 사례는 워낙 유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글 스피커도 스마트 홈디바이스 스타트업 네스트를 구글이 2014년에 인수한 결과물이다.
현행 제도로는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 목표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하다. 국내 산업자본의 투자시장으로의 건전한 유입이 막혀 있는 한, 해외 자본은 스케일업의 끝단에서만 주로 투자한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초기 투자단계에서도 신기술 또는 모기업의 제품 포트폴리오에 통합될 수 있는 기업들을 인수해 성장한다는 CVC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민간투자 활성화의 첫 단추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CVC의 외부 자금 차입 및 출자 한도를 과감히 풀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규제 개선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CVC가 재벌의 편법 상속에 악용될 수 있다면서 우려하고 있지만, 한국의 금융감독 기능은 이를 허용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홍정민 국회의원(경제학 박사)]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39살된 김정은, 술 마시고 운다…중년의 위기 가능성” - 매일경제
- 서울 아파트도 ‘줍줍’ 시작 … 장위자이 무순위 청약간다 [매부리레터] - 매일경제
- 그 많은 치킨집 제쳤다...4년 새 점포수 2배 많아진 업종은 - 매일경제
- 서민 라면에도 손 뻗은 백종원…빽햄 이어 빽라면 내놨다 - 매일경제
- 김부영 창녕군수 야산서 숨진 채 발견 - 매일경제
- 툭하면 “물러가라” 외치더니...北지령 받고 반정부 투쟁 - 매일경제
- 尹부부 나체 그림 등장하자…국회, 정치 풍자 전시회 기습 철거 - 매일경제
- “궁예도 아니고 이걸 예상?” 고속도로 갓길서 ‘훅’ 억울해…영상보니 - 매일경제
- 나도 가입대상?…이달 대출조건 ‘확’ 풀린 4% 고정금리 나온다 - 매일경제
- 리그 최강 안우진 없는 WBC 마운드 운영 전략은?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