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혹한기 피난처는 …"금·미국채·성장株로 버텨라"
지금은 어떤 투자든 위험한때
안전자산 주력하며 기다려야
에너지·식량 가격 상승으로
연내 달러강세 가능성 여전
올초 中봉쇄정책 완화할 경우
글로벌 증시 활기 되찾을수도
◆ 세계지식포럼 ◆
지난해를 기점으로 세계 경제와 투자자들에게는 혹한이 닥쳤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필두로 각국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통화 긴축에 나섰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식량·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초래하고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해부터 본격화한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해 9월 열린 제23회 세계지식포럼 '머니무브: 금리 상승 시기의 투자' 좌담(패널 토론)에 모인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은 올해의 엄혹한 투자 환경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들은 토론 과정에서 "앞으로 주식·채권 투자 모두 위험한 시기가 닥칠 것"이라며 "달러를 제외하고 외환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위험하다. 당장 투자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는 자산은 금과 미국채 정도"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동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투자자라면 위기 이후를 내다보고 성장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담대한 자세도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덩컨 본필드 국부펀드국제포럼(IFSWF)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고물가·고금리 시대를 돌아보면 지금보다 물가가 높았던 시기는 딱 2번, 오일쇼크와 이란혁명뿐"이라며 "이때는 급등하는 석유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 봉쇄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 물가 상승에 압력을 주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물가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IFSWF는 전 세계 국부펀드들의 네트워크로, 한국투자공사(KIC)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국부펀드 45개가 가입돼 있다.
본필드 CEO는 "역사상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침체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는 3번밖에 없었다. 이제 중앙은행들은 인플레가 장기적 압력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지금 미국은 실업률이 매우 낮다. 유가 쇼크는 일시적이지만 노동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 인플레는 더욱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고금리 상황은 성장주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주요 투자자들은 이제 더 이상 성장주를 자산 포트폴리오에 담지 않고 주식은 소비재와 유틸리티, 경기 방어주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플레가 3% 이하일 때 주식이 마이너스면 채권은 반대 움직임을 보이지만, 3% 이상에서는 채권과 주식이 동조화한다. 현재 단기 회사채 수익은 거의 마이너스이고 친환경 채권 투자도 수익률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조던 로체스터 노무라증권 외환(FX) 수석전략가는 달러 강세가 계속된다고 내다봤다. 로체스터 전략가는 "중국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둔화하고 있다. 제조업의 성장 동력인 미국도 모든 수치에서 성장이 둔화하는 양상"이라며 "달러 상승을 90%의 가능성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석유 수출국이 됐고 몇 달 새 수출량이 더 는 데다 앞으로는 천연가스까지 수출 물량이 늘 것"이라며 원화는 물론 유로화도 상당 기간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 콜로라도주는 23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고 유럽과 중국에서도 가뭄이 심각하다. 인도가 쌀 수출을 줄이는 등 식량 가격도 오르는 추세인 만큼 달러 강세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임스 황 eXp커머셜 대표는 "기회는 있지만 침착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부동산 시장이 리밸런싱할 때까지 기다릴 것"을 투자자들에게 주문했다. 그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25년 이상 활약했다. eXp커머셜은 미국 상장사이기도 하다. 황 대표는 "코로나19로 부동산 시장은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다. 텍사스주는 50% 정도가 코로나19 이후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지만 다른 많은 주에서는 여전히 4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무실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무용 빌딩 수요가 줄었고 이제는 주택 시장도 위축됐으며 경기 둔화 때문에 물류센터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정점은 2021년 1분기였다고 본다"며 "2023년부터는 주택 시장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에서 주택난은 아직 심각하지만 실업률이 올라가면 집값을 지불할 수 없어 주택난에도 불구하고 주택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다만 주요 투자자들은 현재 5년, 10년 장기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국제 부동산 투자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는 미국 부동산에 대해 해외 자본의 수요가 있고 조만간 기회가 다시 돌아올 듯하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투자 혹한기에는 안전자산에 주력하며 다시 알맞은 때를 기다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본필드 CEO는 "현재 주요 펀드들의 투자는 미국 국채로 전환하고 있다. 금 역시 인플레의 보호장치"라고 말했다. 로체스터 전략가는 "현재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2023년 3월께 중국이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느슨하게 푸는 것이다. 그런 리스크가 사라지면 글로벌 증시가 다시 활기를 띨 수도 있다"고 했다.
2021년까지 각광을 받았던 환경·책임·투명경영(ESG) 관련 투자는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본필드 CEO는 "ESG는 장기적 현상이다. 국부펀드들도 ESG를 고려한 자산 배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매력은 있지만 투자 가능한 ESG 상품이 아직 부족하다. 성숙도도 낮다"고 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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