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지만 봄날 같습니다"…연극계 거장들의 '늘푸른연극제'

박주연 기자 2023. 1. 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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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7회 늘푸른연극제 참여 작품 '겹괴기담' 연출 김우옥이 9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3.01.0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제가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구순이 됐어요. 늘푸른연극제 덕분에 늙은 사람이…. 날씨가 봄날 같습니다." (김우옥 연출)

대한민국 연극계 원로 거장들의 연극제 '늘푸른연극제'가 일곱번째 시즌을 맞아 '새로움을 말하다'라는 부제로 돌아왔다. 연극 '겹괴기담'을 필두로,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 '영월행일기', '꽃을 받아줘'가 '국립정동극장_세실' 무대에 오른다.

'겹괴기담' 김우옥 연출을 비롯해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의 박승태 배우, '영월행일기'의 김성노 연출과 이성원 배우, '꽃을 받아줘'의 정현 배우겸 연출, 김성환 협력연출 등은 9일 국립정동극장_세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늘푸른연극제'에 임하는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10월 가장 먼저 첫 무대를 장식한 '겹괴기담'은 1978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된 현대 구조주의 연극의 거장 마이클 커비의 실험극으로, 6개의 막을 드리우고 무대를 5개의 공간으로 나눠 교차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담아낸다.

관객은 무대 양쪽에 마주해 앉는다. 두 이야기는 각각 무대 양끝에서 시작해 장면이 바뀔 때마다 막 뒤로 이동한다. 가까이에서 보이던 이야기는 점점 멀어지고, 멀리있던 이야기는 가까워진다.

구순을 바라보는 김우옥 연출은 이 작품을 1982년, 2000년에 이어 지난해 늘푸른연극제에 다시 올렸다. "처음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는 많은 관객들이 당혹스러워했죠. 소화하기 힘들어했어요. 2000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대원장을 하고 정년퇴직하며 학생들과 예술의전당에서 무대에 올렸어요. 작품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구나 느꼈어요. 22년만에 다시 같은 작품을 하며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열광했어요."

김 연출은 "시간이 흐르며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고, 연극을 보고 즐기는 인구도 많아졌다"며 "젊은이들이 어려운 작품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품에 대해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 특별히 중점을 둔 것은 영상미였다"며 "젊은이들이 열광한 부분 역시 영상이라고 본다. 영상에 익숙한 젊은이들인만큼 친근감을 가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982년 이 작품을 초연했을 때는 제대로 된 막을 구할 수 없어 멸치잡는 그물을 써야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7회 늘푸른연극제 참여 작품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날' 최용훈 연출, 박승대 배우가 9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3.01.09. pak7130@newsis.com


13일 개막하는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은 안중익 단편소설 '문턱'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박승태 배우의 새로운 인생작으로, 원로배우 연운경, 민경옥이 함께 출연한다. 배롱나무꽃으로 환생하듯 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며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박승태 배우는 "배롱나무는 7월에서 8월, 9월까지 핀다"며 "그런데 왜 겨울에 필까.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연극을 보면 아마 기적을 경험하고 갈 것"이라며 "얼마나 행복하게 작업하는 지 모른다. 연극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끝을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7회 늘푸른연극제 참여 작품 '영월행 일기' 김성노 연출과 이성원 배우가 9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3.01.09. pak7130@newsis.com

'영월행일기'는 한국 연극사의 기념비를 세워온 '극작가들의 극작가' 이강백의 작품이다. 오는 28일 공연된다. 고문서 '영월행일기' 진품 검증을 위해 모인 '고서적 연구회' 회원들, 500년 전 영월에 유배 갔던 단종을 중심으로 역사적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제15회 서울연극제 희곡상, 제4회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연극의 고전이자 필수 교양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영월행일기 김성노 연출은 "이강백 선생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배우들과 스텝 모두 힘차게 연습에 임하고 있다"며 "1995년작을 2023년에 다시 올리게 됐는데 40년이 지난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관객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지 고민하며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7회 늘푸른연극제 참여 작품 '꽃을 받아줘' 정현(왼쪽) 배우 겸 연출과 김성환 협력연출이 9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3.01.09. pak7130@newsis.com

내년 2월9일 막을 올리는 '꽃을 받아줘'는 연극을 통한 인간성 회복과 민족 전통예술의 현대적 조화를 도모하는 극단 민예 소속 배우 정현의 역작이다. 그의 37회 대한민국연극제 최우수연기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삶의 희망이 사라진 듯한 사랑요양원에서 펼쳐지는 노년의 러브스토리를 담았다.

정현 배우 겸 연출은 "이 작품은 2019년 의정부의 극단 '한네'가 서울연극제에서 올렸던 작품"이라며 "당시 함께 했던 배우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지고, 저만 공연에 참여하게 됐다"며 "김성환 협력연출에게 의뢰해 좀 더 새롭고, 그 때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곱번째 시즌을 맞은 '늘푸른연극제'는 국내 연극계에 기여한 원로 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축제다. 국립정동극장과 스튜디오반의 공동 기획으로 추진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더줌아트센터, 광덕한방병원, 한국고량주의가 후원한다.

주관사를 맡은 스튜디오 반 이강선 대표는 "늘푸른연극제가 7회를 맞았는데 8회, 9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늘푸른연극제는 그냥 하나의 연극제가 아니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연극제를 키워가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연극의 역사를 만들어온 정동세실과 함께 하게된 것은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연극제 운영위원을 맡은 박웅 배우는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는게 사람이지만,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종사해도 (무대를 만들)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원로 배우들이 충분히 무대에 설 수 있는 힘과 마음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앞으로도 늘푸른 연극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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