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무대서 불합리와 싸우는 소녀 마틸다
마틸다 역할 얼리샤 위어 열연
황석희 번역가 '스쿨송' 화제
300회 공연 뮤지컬 '마틸다'
통로석에 등장하는 배우 직관
알파벳 블록·그네 연출 눈길
"자꾸 작다면서 물러서면 안돼. 가만히 앉아 당해주다 보면 익숙해지고 말걸." 구불거리는 긴 머리에 결연한 눈빛, 꼭 쥔 두 주먹을 가진 앙증맞은 천재 소녀가 세상을 바꾸러 왔다. 오랜 시간 남녀노소에게 사랑받아온 명작 '마틸다'는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와 뮤지컬로 동시에 관객을 만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을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이야기꾼인 로알드 달의 소설 '마틸다'를 원작으로 한다. 불합리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속 시원한 '혁명'과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이야기를 스크린과 무대에서 색다른 매력으로 만나보자.
지난 크리스마스 때 넷플릭스 뮤지컬 영화로 공개된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는 다채로운 연출과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강점이다.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을 수상한 감독 매슈 워처스가 연출을 맡고 아카데미 수상 배우인 에마 톰슨과 아역 배우 얼리샤 위어가 출연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마틸다 역에 캐스팅된 위어는 이번 영화에서 발굴된 보석 같은 배우로 불린다. 물구나무를 서면서 노래를 부르는 천진난만함을 보여주다가도, 불의에 맞설 때는 작은 몸에 걸맞지 않은 용기와 당당함이 뿜어져 나온다. 어른들이 '버릇없고 못돼 먹은 꼬맹이'라고 부르며 구박하면 그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며 말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아. 내 이야기는 내가 바꿔야 해."
'천의 얼굴' 톰슨은 괴팍한 트런치불 교장에 딱 맞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인 그는 공포와 통제로 크런쳄홀 학교를 통제한다.
뮤지컬과 다른 대사 번역을 느끼는 것도 재밋거리다. 영화에선 '번역의 신'으로 불리는 황석희 번역가가 작업을 맡아 주목받았다. 그는 알파벳 A부터 Z까지 운율을 맞춰야 하는 '스쿨송(School Song)'을 매끄럽게 번역해내 또 한번 호평을 받고 있다. 황 번역가는 "알파벳을 원곡 타이밍과 동일하게 잡아 번역하는 건 솔직히 상상하기도 싫은 징그러운 작업이었다"며 "번역가로서의 끈기라고 해야 할지, 오기라고 해야 할지, 우직하게 하나하나 꾸역꾸역 머리털을 뽑아가며 썼다"고 최근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어 더빙에는 트런치불 교장 역에 뮤지컬 배우 정영주, 마틸다 역에 2018년 뮤지컬 국내 초연 당시 1대 마틸다를 맡았던 아역배우 설가은 양이 참여했다.
세련되고 정제된 연출과 편집이 영화의 강점이라면, 20명의 아역배우가 뿜어내는 생생함은 오롯이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다. 최근 300회를 맞은 뮤지컬 '마틸다'는 다음달 26일까지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이 작품은 2018년 9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초연돼 올해 두 번째 시즌으로 관객을 다시 찾았다.
제작사 신시컴퍼니 측은 "뮤지컬 '마틸다' 한국 공연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이라며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전문 번역가와 국내 창작팀이 해외 오리지널 팀과 수없이 의견을 나누는 등 번역과 개사에 공을 들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와 달리 거대한 체구의 고약한 성미를 표현하기 위해 남성 배우인 최재림·장지후가 트런치불 교장 역을 맡는다. 극중 트런치불 교장과 아역배우가 무대가 아닌 객석을 통해 등장· 퇴장하는 장면이 많은 덕에 통로석의 인기가 뜨겁다. 총 4개 통로를 뛰어다니는 배우들을 코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 위 연출과 대형 프로시니엄에도 눈길을 빼앗긴다. 알파벳 블록을 입체적으로 쌓아가는 '스쿨송'과 배우들이 그네에서 있는 힘껏 발을 굴러 객석으로 날아오르는 '웬 아이 그로 업(When I Grow Up)', 극 후반에 짜릿함을 선사하는 '리볼팅 칠드런(Revolting Children)' 등 넘버를 수십 명의 아역배우와 성인배우가 함께 소화한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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