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안 줘도 솜방망이"…동의의결제 없는게 낫다는 이유
#김천 신음지구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조경 공사를 맡은 A사는 유진종합건설(전 삼도건설)로부터 추가 공사대금 3억10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전가하는 부당 특약으로 본 손해만 2억7600만원. A사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분쟁조정협의를 신청하기 전 유진종합건설이 먼저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유진종합건설이 제시한 시정방안은 △미지급된 하도급대금 지급 △부당특약에 따른 손해배상 지급 △하도급법 교육 이수다. 이대로 동의의결이 확정되면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제재는 이뤄지지 않는다.
공정위는 하도급법을 위반한 기업의 동의의결 신청을 인용한 첫번째 사례로 신속한 피해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업계에선 오히려 피해 구제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의의결제도로 법 위반 사업자의 위법 행위는 면죄되는 반면 시정 방안은 기존에 준수해야 할 법을 뒤늦게 이행하는 수준에 그쳐 악용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다. 공정위는 제도상 미비점에 대한 보완할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공정위 전체 소관 법률에서 동의의결제도가 개시된 건수는 약 20건에 그친다. 법률의 특성에 따라 달리 규율되지 않고 공정거래법 상의 내용과 동일하게 도입·운영되다보니 실용성에 한계가 있다는게 연구원의 지적이다.
실제로 동의의결은 원사업자 등의 신청으로 개시되는데, 하도급법 위반 사건은 대부분 대금 지급과 관련한 사안이라 동의의결보다 당사자 간 합의(조정)가 더 신속하다. 2020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하도급 분야 조정사건(총 897건) 중 조정성립률은 74%에 이른다. 조정사건 처리기간도 2019년 기준 평균 49일에 불과하다.
반면 동의의결제도는 동의의결 개시 여부 결정, 의견 수렴, 본 사건 심의 등의 단계를 거치다보니 시간이 더 걸린다. 동의의결 개시 신청부터 최종 동의의결 결정에 소요되는 기간이 300일 이상인 경우가 60%이라 신속한 사건 종결이라는 도입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보고서는 이 때문에 동의의결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피해를 본 하도급업체에 동의의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법을 위반한 원도급사가 제시하는 시정 방안에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의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했다. 분쟁조정협의가 진행되는 중에 원도급사가 동의의결을 신청해 고의로 사건 진행을 늦추는 등 악용 소지를 차단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성진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정위가 동의의결 결정을 내리면 행정적인 강제력이 생겨 피해 하도급사가 추가 소송을 할 수도 없고 소송을 해도 위법성을 물을 수 없어 패소하게 된다"며 "건설하도급 분야만큼은 굳이 상충되는 동의의결제도를 적용하기보다, 하도급 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해 해결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홍 연구위원은 이어 "동의의결제도가 대기업 봐주기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법을 준수한 사업자와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법 위반 사업자가 신청하는 시정 방안에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의 피해 보상 방안이 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제도 도입 초기라 보완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개인적으론 징벌적 손해배상의 필요성도 공감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한편, 공정위는 조만간 유진종합건설에 대한 잠정 동의의결안을 결정해 이해관계인과 관계법정기관의 의견수렴을 거칠 계획이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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