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믿을 수 있을까' 물음표 달린 한겨레 신뢰 추락의 위기
미디어오늘 1384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한겨레신문 홈페이지 오른쪽 하단을 살펴보면 154쪽짜리 '한겨레 신뢰보고서'가 공개돼 있다. 자사 보도를 신랄하게 평가한 내용이 담겨있다. 저널리즘 원칙 문제를 세세하게 나열하고 반성과 성찰을 담는 등 형식과 내용면에서 보면 언론계 통틀어 최초다.
보고서 첫 장에서 한겨레는 저널리즘 기본원칙 키워드로 '신뢰'를 제시하면서 “한겨레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돈을 벌려면, 사람들이 한겨레를 믿어야 한다. 따라서 한겨레는 모든 일을 신뢰를 얻는다는 목적에서 해야 한다”라고 썼다.
부록에는 지난 2020년 5월 제정한 한겨레 취재보도 준칙(2차)이 실렸고 한겨레신문사 기자 일동은 “정치권력뿐 아니라 자본권력 등이 언론에 가하는 압력과 간섭은 과거에 비해 은밀하지만 훨씬 집요해져, '독립적 취재와 보도'의 기준선을 엄격히 지켜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시민의 바람과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지 않고는, 당면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선언했다.
1988년 시민 성금으로 탄생한 한겨레신문에 늘 따라붙은 것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이라는 상징이었다. 창간 이후 오보를 일으키고 저널리즘 윤리 위반 문제가 나오면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적어도 한겨레 기자가 기사를 거래를 하고 돈을 수수한 적은 없었다.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의 중심인 김만배가 한겨레 기자에게 수억 원의 돈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한겨레의 신뢰를 정면으로 강타한 일이다. 신뢰로 먹고 산다는 언론이 그것도 신뢰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한겨레 내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언론계의 치욕에 가깝다.
한겨레 신뢰보고서로 다시 돌아가면 이런 말도 쓰여있다. 뉴욕타임스의 윤리적 저널리즘 항목이라며 “뉴욕타임스의 공정성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재정적 자산을 배우자나 가족, 친구가 갖고 있지 않음을 보고해야 한다” “편집인, 편집국장, 부국장, 경제금융 산업 에디터와 부에디터, 논설실장과 부실장은 규정에 어긋나는 자산을 갖고 있지 않음을 매년 회사 최고재무책임자에게 증명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기술했다.
김만배와 한겨레 기자의 돈 거래는 신뢰보고서에 나온 저널리즘 원칙과 한겨레의 성찰 그리고 다짐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사인 간 거래였다는 허튼 소리는 입에 올리지 말길 바란다. 공적지위인 기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거래였다. 차용증도 쓰지 않으면서 어떻게 수억 원의 돈이 흘러갔는지 사회통념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부정청탁금지법에 따르면 언론사 소속 본인을 포함해 배우자 등 가족이 이해관계에 있는 대상에게 금품 등을 수수할 수 없다.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문제에 대한 판단을 포함해 금전 거래에 대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한겨레 스스로 밝혀내야 한다.
김만배 입장에선 '대장동'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보도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현직기자로 흘러간 돈이 침묵의 대가였는지 나아가 김만배를 적극 변호하는 보도의 대가였는지 아니면 소위 '보험'을 들어놓고 현직기자를 쥐고 흔들려는 용도였는지 등 밝혀내야할 대목이 많다.
한겨레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모든 조처를 투명하게 내놓고 시행하는 일이 남았다. 한겨레가 내놓았던 그리고 내놓을 보도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김만배와 한겨레 기자의 거래 전말을 소상히 밝히는 일부터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언론인 출신 김만배가 현직기자와 돈을 매개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 기자단의 폐쇄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돈 거래 대상이었던 기자들이 모두 법조팀 소속이다. 법조기자단 가입의 벽이 워낙 높다보니 소속된 매체 기자들은 남다른 엘리트 의식마저 엿보인다.
검찰발 정보 접근의 차별성이 존재하는데 법조기자단은 그 차별의 수혜를 받으면서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된다. 기자단의 폐쇄성은 허물이 있더라도 일원을 보호해주는 본능으로 이어진다. 언론인 출신 김만배가 법조팀 기자를 대상으로 로비를 한 것도 기자단의 폐쇄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직 판사와 검사를 향한 로비도 김만배가 법조기자단 소속 일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사건을 법조기자단의 폐쇄성을 뜯어고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겨레는 법조기자단 일원을 유지할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국민의알권리 차원에서 기자단이 유용한다는 반론도 존재하지만 이번 사건이 벌어지게 된 여러 요인을 따져보면서 그 요인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겨레 창간 정신마저도 훼손될 수 있는 사건이다. 항간에 폐간 얘기까지 떠돈다. 한겨레를 믿는다라는 말을 언제 들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모든 짐을 짊어지라는 게 아니다. 한겨레의 추락은 한국 저널리즘 전체의 추락과 직결된다는 걸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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