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미아3구역 주민 황씨가 한숨 내쉰 까닭

김다린 기자 2023. 1. 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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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➋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진짜 문제
간소화 절차로 사업 강행하기 일쑤
낮은 수익성 때문에 전문가 개입 꺼려
사업 전문성 보완할 법적 절차 절실
시장 침체로 조합원 부담 커질 수도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을 두고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대규모 정비사업에서 벌어지는 지긋지긋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마찰과 갈등이 생기기도 전에 신속하게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취지였다.

# 하지만 최근 전국 곳곳에서 진행 중인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에선 갈등이 불거지는 사례가 잦다. 이유가 뭘까. 미아동 767-51번지 일대 가로주택정비사업 현장을 통해 문제를 자세히 알아보자. '미니 재건축의 비명' 두번째 이야기다.

현재 미아동 767-51번지 일대 가로주택정비사업 현장은 혼란에 빠져있다. 어떤 주민은 조합 설립 동의서에 서명할 때 "아파트 두채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또다른 주민은 프리미엄이 1억원 넘게 붙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 정비업체 측은 "사업의 핵심 내용뿐만 아니라 조합 설립 동의서를 철회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충분하게 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주민들은 듣지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엇갈리는 주장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주민들이 서명한 조합 설립 동의서엔 정비 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뚜렷하게 명시돼 있지 않다. 지하 2층ㆍ지상 10층 규모의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고, 여기에 679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하다는 내용만 간단하게 기록돼 있을 뿐이다. 조합 설립 추진위나 정비업체 측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기 전에 공식적으로 공청회나 사업 설명회를 개최한 적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대상이 되는 구역엔 노후주거지가 많고, 이런 골목엔 노년층의 주거 비율이 낮지 않다는 점이다. 정비사업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노년층은 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쪽의 말에 쉽게 현혹돼 설립 동의서에 도장을 찍을 공산이 크다.

미아동 767-51번지의 주민 황희운(가명ㆍ84)씨도 그랬다. 정비구역 내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황씨는 '동네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란 홍보요원의 설명을 듣고 조합 설립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가 뒤늦게 적지 않은 분담금을 내야 하는 사업이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철회 의사를 밝혔을 땐, 이미 조합이 설립된 이후여서 철회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황씨는 그렇게 원치도 않는 정비 사업의 조합원이 되고 말았다.

미아동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이용구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그나마 젊은 세대는 말도 안 되는 사업이라고 동의를 거부하곤 하지만, 노인세대는 좋은 게 좋은 일이라면서 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조합원 분담금이나 추가 분담금에 대한 위험성도 듣지 못했는데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비 사업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전문가인 민경호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주임교수는 "메이저 건설사와 신탁사, 정비업체, CM사, 법무법인 등이 관여해 안전하게 진행되는 대형 정비사업과 비교하면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서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역시 조합 설립 단계에서부터 정비사업에 노하우가 있는 전문업체가 사업 추진 단계에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조합설립 인가가 나면, 사업에 동의하지 않은 토지소유자가 정비사업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소규모주택정비특례법 제24조 제1항은 "조합원은 토지등소유자로 하되"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토지 소유자이기만 하면 사업에 동의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조합원 자격이 부여되는 셈이다.

도시정비 전문 법무법인 윤강의 허제량 변호사는 "이 법은 토지소유자를 사업 동의 여부를 불문하고 가로주택 정비사업의 조합원이 되게 하는 소위 '강제가입제'를 채택했다"면서 "이때 정비사업 구역에서 자신의 건물만 정비 대상에서 빼는 건 쉽지 않고, 조합원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건물을 조합에 팔아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정비사업이 순조롭게 전개되면 진행 과정에서 조합원 간 갈등을 해소할 여지가 생긴다. 어쨌거나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의 목적이 낡은 주택과 불편한 골목길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수는 비용부담이 커질 때다. 조합원 분담금을 두고 이견이 생기면 사업이 순항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지금 부동산 시장은 깊은 침체에 빠져 있다.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0%대 저금리와 유동성 덕분에 최근 몇 년간 급등했던 집값은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자마자 약세로 전환했다. 금리 인상이 이어질 올해에도 시장 하락세는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계는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자금난에 미분양 증가까지 겪고 있다. 가뜩이나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단지 규모가 작아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여기에 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원가 부담이 늘어난 상황이다. 이 부담은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 증가와 사업비 대출 이자 증가,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특례법'을 앞세워 정비사업을 속도전으로 유도한 지자체와 건설업계의 탓이 크다. 정비 사업은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받아 주민 스스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한데도, 이런 역할을 할 법적인 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정비사업에서 정부가 활성화할 건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규모를 늘리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보전과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향이다"면서 "원주민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앞으로도 더 큰 사회 문제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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