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왜 관료개혁은 말하지 않나

김순덕 대기자 2023. 1.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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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만한 기업도 사람이 바뀌면 달라진다. 심기일전(心機一轉·어떤 동기가 있어 이제까지 가졌던 마음가짐을 버리고 완전히 달라짐). 이걸 하라고 연말이면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인사를 하고, 5년마다 나라에선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여덟 달이 지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따지면 열 달. 사람으로 치면 없던 아이도 낳았을 기간이다. 성과는… 아직 모른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청문회와 북한 무인기 침투, 그리고 대응을 보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공직사회는 1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촬영한 기념사진. 동아일보DB


취임 석 달도 안 된 경찰청장이 만취?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청문회에서 “주말 저녁이면 저도 음주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총수도 휴무일 술 마실 권리가 있다는 인권선언! 하지만 경찰청장 된 지 3년쯤 됐으면 모른다. 임명된 지 석 달도 안 된 초대 경찰청장이 주말이라고 지방에서 만취 상태로 잠든다? 그것도 MZ세대에는 크리스마스보다 더 핫한 핼러윈데이에?

취임 다음날 윤희근은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의 허위경력 의혹과 이준석 국민의힘 성접대 의혹 등을 수사해온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을 서울 성동경찰서장으로 옮기는 등 정권이 원하는 총경 전보인사를 단행한 경찰 총수였다. 위에는 빠릿빠릿하되 국민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난 관료의 특징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1차 기관증인 보고에서 답변하고 있는 윤희근 경찰청장. 동아일보DB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도 항상 소재파악이 가능하도록 연락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칙이 있다. 경찰 총수부터 이 복무규정을 어겼다. 한마디로 공직기강이 빠진 거다. 그러니 112신고가 빗발치는데도 류미진 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이 “112상황실 아닌 자기 방에 머무는 게 관행”이라고 했던 거다. 현장 책임자인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구급대를 지원해 달라”는 무전을 듣고도 “흘러가는 무전 정도로 생각했다”고 하는 거다.

기사 없으면 꼼짝 못하는 정부혁신 주무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 총애를 받는 장관은 이렇게 행동해도 된다’를 보여주는 연구 모델이다. 대통령 앞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도 국민 앞에선 가장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장관이라고 단언한다(유시민도 장관 때는 그러지 않았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1차 기관증인 보고에서 참사 희생자 故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오른쪽)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작년 11월 8일 국회 예결위에서 이상민은 “최종 컨트롤타워는… 재난 구조라는 면에서는 제가 맞다”고 했다. 그러고도 작년 말 국조에서 이태원 참사 당일 첫 보고를 받은 뒤 8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는 지적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라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했다. 늦게 간 이유는 더 황당하다. 일산에 사는 운전기사가 자신의 강남 자택까지 와서 이태원 현장에 태워가길 기다렸기 때문이란다(정부혁신을 맡은 책임자로서 참 비혁신적 언행이다).

참사 현장에 있던 유해진 소방관은 청문회에서 “너무 외로웠다. 통제가 안 돼서 소방관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소방청장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안 오면 그만이다. 중앙사고대책본부는 명령할 수 있다. 행안부 장관이 설치하면 된다. 그걸 이상민은 하지 않았다. “재난은 종료됐고 중대본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이유다. 이런 주무장관에 대해 경찰 특수본은 조사 한번 하지 않고 수사를 끝낼 모양이다.

용산 대통령실 상공만 중요한가? 국민 보호는?

관료들의 무책임한 대응이 의도적일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징글징글하게 이용된 ‘세월호’로 인해 이번에도 휘둘릴 수 없다는 경계심도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관료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면 심각하다. 인사권자에만 잘 보이면 그만, 국민에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자세 말이다.

작년 12월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침투 사태를 보자. 당초 용산 대통령실 상공 침투를 부인하던 군 당국이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통령실 보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용산 이북 지역, 나머지 국민은 보호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태원 희생자들처럼?

북한의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비행한 직후인 지난해 말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무기체계 현황을 점검하는 윤석열 대통령. 동아일보DB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군의 비정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처럼 건물인지, 참모인지 내각 머리 꼭대기에 서서 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출범한 지 여덟 달이 되도록 뭘 했기에 여태 전임 정권 탓만 하는지 믿음이 안 간다.

공직자 감찰조사로 관료개혁 되겠나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강조하며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평생 관료로 살아온 윤 대통령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기득권 유지에 목맨 집단으로 관료보다 더한 집단이 또 있는지 말이다. 3대 개혁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먼저 관료가 달라져야 국민이 믿고 따른다는 얘기다.

24인의 국가 원로·학자들이 고뇌에 찬 토론을 모아 최근에 낸 책 ‘한국의 새 길을 찾다’에서 강조한 것도 공공개혁이다. “국가·사회적 창조와 혁신에는 우선순위가 있다”며 “제일 먼저 손대야 할 부분은 공공부문”이라고 못 박았다. 정치는 흉물이 됐고, 관료는 잘못된 정치에 굴종해 권력을 누리기만 하며 책임은 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정부 부처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103명 중 현 정부에서 임명된 96명을 분석한 결과 관료 출신이 절반인 48명이었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관료개혁은 필요하다. 3대 개혁은 국민의 협조가 절실하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관료개혁은 윤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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