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용의 화식열전] 은행원 ‘백만장자’ 시대…어떻게 가능해졌나

2023. 1. 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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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은행 지난해 부서장 급
퇴직금 평균 9억5100만원
임금 올라 올해 10억 넘을듯
금융위기 후 저금리시대에도
예대금리차 더 높여 이익급증
정부 지원약속·과점수혜 상당
건전성 명분 주주환원 소극적
보수·복지로 내부혜택만 늘려

‘백만장자’(millionaire)를 영영사전에서 찾으면 ‘최소 백만달러 이상을 가진 부자’(a rich person who has at least a million dollars)로 풀이된다. 백만 달러면 약 13억원이다.

매년 ‘부자보고서’를 내는 국민은행은 현금성 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로 정의한다. 퇴직을 하면서 10억원 정도를 손에 쥔다면 백만장자나 부자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은행권의 희망퇴직이 한창이다. 지난 해보다 규모가 더 늘었다고 한다. 그새 임금도 더 올랐으니 올해 퇴직자들이 손에 쥘 액수도 더 늘어날 듯하다. 로또복권 1등 당첨자 못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해 반기기준 은행권 퇴직금 상위권 수령액을 살펴봤다. 임원이 아니어도 보수가 5억원을 넘으면 상위 5명의 내역을 공시된다. 전체 평균은 아니지만 부서장·지점장 급 평균수준으로 볼 만하다.

씨티은행이 평균 15억56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 11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경남·우리·국민·신한은행은 8억원대 후반이었다. 이들 6개 은행 평균은 10억3000만원이다.

퇴직금만 따져도 씨티은행 14억4400만원, 하나은행 10억3200만원의 순으로 가장 많았다. 경남·우리·국민은행도 8억원대였고 신한은행이 7억5600만원으로 그나마 적었다.

은행들이 희망퇴직자에 큰 돈을 주는 이유는 세 가지다. 비대면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지점축소와 감원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강제 해고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보통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 부실 위험도 하락해 예대금리가 줄어드는 게 보통이다. 박리다매의 원리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의 움직임은 전혀 달랐다.

2000~2008년과 2009년 이후 금리 평균을 보자. 기준금리가 4.08%에서 1.93%로 낮춰지면서 수신금리도 4.88%에서 2.28%로 떨어졌다. 비슷한 수준(-53%)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출금리는 6.71%에서 4.18%로 38%가량 하락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예대금리차는 1.83%포인트에서 1.91%포인트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마진률이 높은 상황에서 2015년 이후 부동산 호황으로 대출까지 증가하면서 매출(영업수익)이 급증한다. 하지만 이익증가에도 주가(은행지주)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5배로 떨어진다.

금융당국은 은행 자본 건전성을 이유로 배당을 제한했지만 매년 늘어나는 명예퇴직금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다. 주주 보다는 임직원에 더 많은 배분이 이뤄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PBR 0.5배는 시장가치가 청산가치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주요국 은행들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규 퇴직금의 배가 넘는 수준의 특별퇴직금 역시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은행을 비롯해 대부분의 금융회사 면허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은행 수는 가장 적다. 덕분에 과점시장으로 유지되고 있다. 과점 체제에서는 가격담합도 가격통제도 쉽다.

정부는 은행에 유사시 구제금융(bail-out)도 제공한다. 덕분에 은행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자체등급 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혈세 지원을 바탕으로 원가를 낮추고 있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기업금융도 시중은행에서 국책은행으로 대부분 넘어간 상황이다. 개인대출은 담보비율이 높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도 공적기관의 보증 등으로 부실 위험이 제한적이다.

경쟁이 제한된 시장에서 높은 마진율까지 보장되면 돈을 못 벌 이유가 없다. 배당은 건전성에 부담이 되고 지분 과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이유로 압력이 그리 높지 않다.

은행권에서 희망퇴직을 하면 단번에 큰 돈을 손에 쥘 수 있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한 것을 보면 계속 다니더라도 그에 못지 않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

국내 은행을 17년 정도 다니면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 올해에는 기본급의 400% 이상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한다. 과도한 부채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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