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교수인데 결혼하자"…여성에게 6억 사기친 전과9범[사사건건]

한광범 2023. 1. 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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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교수 행세하며 결혼 미끼로 수억원 빌려 '탕진'
피해자, 사채까지 끌어써…수억 빚 고스란히 떠안아
법원 "피해자 경제적 어려움 물론 정신적 고통 안겨"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교수 행세를 하며 미혼 여성에게 접근해 결혼을 미끼로 6억 6000만원을 뜯는 남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채까지 끌어 쓴 피해 여성은 인간적 배신감은 물론 수억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기혼 남성 A씨는 2020년 한 채팅 앱을 통해 미혼 여성 B씨를 만난 후 교제를 시작했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A씨는 자신의 신분을 ‘방송기자 출신 대학교 연구교수’라고 속인 상태였다. 피해여성을 속이려 교수 신분증을 위조하기도 했다.

중고거래, 전세자금 사기 등 전과 9범이었던 A씨는 피해 여성과 교제를 시작한 2020년 6월부터 여성에게 결혼을 약속하며 돈을 받아가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무선청소기를 저렴하게 구입하게 해주겠다며 받아간 73만원이었다.

A씨의 범행은 이후 더 대범해졌다. 그는 같은 해 7월 “돌아가신 아버지 상속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상속이 마무리되면 돈을 갚겠다”고 속이고 변호사 비용 등의 명목으로 7550만원을 받아갔다.

그 이후엔 ‘전임교수 임용 관련 비용이 필요하다’며 더 많은 비용을 요구했다. A씨가 ‘발전기금을 내야 한다’거나 ‘조교 연구비통장이 정지돼 돈이 필요하다’ 등의 명목으로 피해 여성에게 받아간 돈은 3억2200만원에 달했다.

카톡 대화방·통장 잔고확인서까지 위조

A씨는 이후에도 전세 7억원에 알아본 신혼집 계약에 돈이 조금 부족하다며 6000만원을 더 받아갔다. 그는 이밖에도 식사비용 등의 명목으로 돈을 챙겨갔다. 범행은 2021년 2월까지 계속됐으며, 받아간 돈만 6억6000만원에 달했다.

A씨는 피해여성을 속이기 위해 교수로서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라며 카카오톡 대화내역을 허위로 만들거나, 통장 잔고확인서의 조작하기도 했다.

결혼을 생각했던 피해 여성은 A씨의 계속된 금전 요구에 퇴직금 중간정산, 보험 중도해지, 은행 대출은 물론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리면서까지 이에 응했다.

A씨는 받은 돈을 생활비나 가상자산 투자 등에 대부분 탕진했다. 피해 여성이 변제를 요구하자 A씨는 결혼을 서두르자며 결혼날짜를 잡고 예식장을 계약해 여성을 안심시키려 했다. 실제 신혼집을 마련해 함께 살기도 했다.

하지만 막대한 빚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피해여성은 A씨가 채무 변제 의사를 보이지 않자 경찰에 고소했다. 여성은 경찰 수사로 A씨의 실체가 드러나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했던 A씨는 긴급체포돼 구속됐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인정한 후 뒤늦게 일부 금액인 1억 6000만원을 여성에게 돌려줬지만 나머지 5억원은 모두 탕진한 상태였다. 결국 여성은 가족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채무를 상황했지만 여전히 수억원의 채무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여성, 민사소송 걸었지만…피해회복 어려울듯

검찰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9~10등급의 신용등급에 별다른 소득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속여 상당한 금액을 편취했다”며 “피해자는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엄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1심은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A씨 배신행위로 좌절하고 분노하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과 A씨 모두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고법 형사1-1부(정정미 백승엽 이흥주 부장판사)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행복한 결혼을 꿈꿨던 피해자는 A씨를 평생의 배우자로 생각하고 정성과 애정을 쏟았는데 모든 것이 사기 범행이었다”며 “피해자가 입은 배신의 상처, 자존감의 훼손, 사회관계의 어려움 등 정신적 고통은 금전적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가 2004년부터 9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기 범행을 반복하고 있고 처벌을 받고도 성행을 개선하지 않고 있다”며 “더 이상의 사기 범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욱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 여성은 형사고소와 별도로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다만 A씨의 경제력 등을 감안할 때 승소하더라도 실제 피해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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