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의 직격 야구] 메시지 약한 허구연 총재의 신년사
새해 경기(景氣) 예측과 진단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내는 재계 수장들과는 달리 스포츠 관련 기관장들의 신년사는 '장밋빛 일색'인 경우가 많다. 명확한 근거없이 목표를 넉넉하게 잡고 팬들에게 허울뿐인 공치사를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올해 KBO 허구연 총재의 신년사도 다름없어 보인다. 허 총재의 신년사를 먼저 살펴보자.
*첫번째로 '팬 퍼스트'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모범적으로 팬서비스를 한 선수에게 주는 팬 퍼스트 상을 신설해 시상했으며 고등학생, 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MZ세대 위원회를 운영해 젊은 세대의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야구를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를 열어 야구팬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육성 응원과 취식이 다시 허용되며 600만명이 넘는 관중분들께서 야구장을 찾아 주셨고 한국시리즈 전 경기가 매진되기도 했습니다. KBO 리그를 찾아주신 팬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KBO는 올해도 변함없이 보여주시는 여러분들의 사랑을 발판 삼아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와 그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추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국제 경쟁력' 강화입니다. 2023년은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9월 아시안게임, 11월 APBC 대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제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수한 선수를 발굴하고 전력분석을 철저히 해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더불어 더욱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잠실, 대전, 부산, 인천 등 프로야구장 신축에 힘을 보탤 예정이며 지난해에 이어 유소년 캠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남해안 훈련 벨트와 야구센터 건립 등 경기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인프라 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세번째는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와 창출입니다. 국내 프로스포츠가 스포츠산업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각종 규제를 개선하고 유관단체와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리그가 건강한 자생력을 갖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종전 수익은 극대화하며 신규 수익 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수익 구조를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이에 대한 일부 언론과 야구인들의 따가운 지적을 옮겨보자.
먼저 고등학생, 직장인 등으로 구성된 MZ세대 위원회는 4개월 논의 끝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영상'이라는 뜬구름 잡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젊은 팬들을 사로잡겠다는 기대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다.
육성 응원과 취식이 다시 허용됐는데도 지난해 관중이 608만명에 불과, 2010년 592만명이후 최저를 기록했음에도 올해 700만~800만명 회복의 절박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늘 불꽃 접전이 펼쳐지는 한국시리즈는 매년 '만원 사례'를 이루는 게 공식이 되다시피 했는데 이를 공적으로 내세우는 건 오히려 궁색해 보인다.
오는 3월 열리는 WBC에서의 4강 진출 여부가 올시즌 관중 동원의 키를 쥐고 있다는 건 어린 팬들도 감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지만, 박병호 강백호 등 전문 1루수가 3명이 몰려 있고(지명타자를 겸직할 수 있지만), 외야에는 이정후 박건우 박해민 등 중견수가 3명이 집중된 대표선수 명단은 과연 최강의 선택이었을까.
필자는 지난 50년간 아마추어 포함, 국가대표 선발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1루수가 3명이나 포함되는 명단은 이번에 처음 본다.
'학폭' 논란이 있지만 안우진(키움)은 대표 발탁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안우진보다 구위가 현저히 떨어지는 오른손 선발, 계투 요원 4~5명을 보면 팬들의 한숨은 저절로 나온다. 총재가 "대표 선발권은 나에게 없다"고 변명하면 할말이 없지만, 메이저리그(ML)의 에이스급인 오타니 쇼헤이(28․LA 에인절스)가 마운드를 지키는 숙적 일본에 어떻게 맞설지 벌써 궁금해진다.
신규 수익 모델 확대, 한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ML 야구카드업계의 1위이며 기업 규모가 나이키급인 탑스(TOPPS)는 하비 코리아를 앞세워 국내 야구카드업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KBO의 자회사인 KBOP는 1,2개 구단의 반대를 내세워 하비 코리아에 '계약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고 한다.
탑스는 매년 1억3000만원에 5년 계약을 제의했으나 계약이 불발, KBOP는 6억5000만원의 수익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국내 야구카드 선도업체인 대원미디어와 경쟁을 붙이면 야구카드 비즈니스가 활력을 띨 것으로 보이는데 좀더 성의있는 구단 설득이 아쉽다.
야구팬이면 누구나 느끼듯 관중 동원의 최대 현안은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의 급속한 전환이다. ML은 2시간 40분대 진입을 위해 한 경기에 20여분을 잡아 먹는 '수비 시프트'를 올해부터 금지시키기로 했다. 왜 KBO와 10개 구단들은 공식 논의조차 하지 않는 걸까.
신인급 선수들의 어이없는 송구 실책은 중고교 때부터 훈련이 부실한 데서 나온다. 10년전만 해도 중고교 선수들은 매일 15분씩 '캐치볼' 훈련을 했으나 지금은 3~5분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한심한 현실을 허 총재는 외면해서는 안된다.
허 총재의 별명은 '허프라'다. 구장의 인프라 개선및 확대에 해설위원시절부터 전국을 누비며 열정을 쏟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구장 시설이 쾌적해도 3시간 15분 이상의 느려 터진 진행에, 어이없는 실책이 난무한다면 팬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허 총재가 지난 3월 취임 이후 중고교 현장을 한번도 찾지 않은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허 총재는 취임 직후부터 "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연임을 않든, 뜻하지 않게 연임을 하든 남은 임기 11개월 보름간 경기인 최초의 총재로서 공적을 남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신년사가 '총론'이라면 총론을 뒷받침할 '각론'에 더 힘차게 매진하길 기대해본다. "야구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느끼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꼭 지켜지길 팬들이 바라고 있기도 하다. 본지 객원기자
스포츠한국 김수인 si8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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