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희망퇴직 급증, 두달새 약 3천명 짐쌀듯...노조가 "대상 늘려달라"

문혜현 2023. 1. 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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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2천200여명보다 급증…KB도 작년보다 많은 약 730명 신청
경기·업황 침체 예상, 인생2막 조기준비 등 영향
연합뉴스

은행의 희망퇴직이 급증하고 있다. 두달새 약 3000 명이 짐을 쌀 전망이다. 경기와 금융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인생2막을 조기준비하는 영향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회사측 희망퇴직 규모가 작다며 노조가 오히려 대상을 늘려달라는 요구하는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에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730여 명이 퇴직 의사를 밝혔다.

최종 확정자는 18일 자로 은행을 떠나는데, 만약 신청자가 모두 퇴직할 경우 지난해 1월 674명보다 50명 넘게 늘어나는 셈이다.

이번 희망퇴직 대상은 1967년생부터 1972년생, 만 50세까지였다. 퇴직자는 특별퇴직금(근무기간 등에 따라 23∼35개월 치의 월평균 급여) 뿐 아니라 학기당 350만원(최대 8학기)의 학자금과 최대 3천400만원의 재취업 지원금, 본인과 배우자의 건강검진, 퇴직 1년 이후 재고용(계약직) 기회 등을 받는다. 지난해와 비교해 신청 대상·조건이 비슷한데도 퇴직 희망자가 뚜렷하게 늘어나자 사측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신한은행도 지난 2일 올해 첫 영업일부터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해 10일 접수를 마감할 예정인데, 역시 작년보다 신청자가 급증할 분위기라는 게 신한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가장 큰 이유는 희망퇴직 대상 확대다. 지난해의 경우 부지점장 이상만 신청할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직급과 연령이 부지점장 아래와 만 44세까지 낮아졌다.

부지점장 이상 일반직의 경우 1964년 이후 출생자(근속 15년 이상), 4급 이하 일반직·무기 계약직·RS(리테일서비스)직·관리지원계약직의 경우 1978년 이전 출생자(근속 15년 이상)다. 특별퇴직금으로는 출생연도에 따라 최대 36개월치 월 급여가 지급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와 비슷한 조건이 앞서 2018년 제시됐는데, 당시 최종적으로 700여 명이 대거 퇴직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이미 희망퇴직 절차를 마무리한 NH농협은행에서도 대상 연령을 만 40세로 낮추자 2021년(427명)보다 60명 이상 많은 493명이 짐을 쌌다. 작년 12월 19∼27일 신청을 받은 우리은행에서도 직원들이 대거 떠날 가능성이 있다. 신한·농협과 마찬가지로 희망퇴직 신청 대상을 만 40세까지 늘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권은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약 두 달 만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만 약 3000 명 이상이 떠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년 전(2021년 12월∼2022년 1월) 5대 은행에서 직원 2244명(KB국민은행 674명·신한은행 250명·하나은행 478명·우리은행 415명·NH농협 427명)이 퇴직한 것과 비교해 많게는 1000 명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은행권의 희망퇴직이 급증하는 데는 은행의 필요보다는 직원들의 수요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오프라인 점포 축소 등으로 사측도 불가피하게 은행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은행원이 노조를 통해 스스로 희망퇴직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령 등 희망퇴직 대상을 확대한 것은 노조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지점장(부장급)은 물론 부지점장(부부장급)도 못 달고 임금피크를 맞아 차장으로 퇴직해야 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그럴 바에야 50대 초반, 40대 후반에라도 빨리 나가서 제2의 인생을 여유 있게 준비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특히 부부가 모두 은행원인 경우 한쪽이 조기 희망퇴직을 통해 육아나 노후 준비에 전념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특별퇴직금, 학자금·재취업 지원 등의 현재 희망퇴직 조건이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는 인식도 희망퇴직을 부추기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제시되는 희망퇴직 조건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대출로 사상 최대 이익이 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직원들도 알고 있다"며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은행 업황도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좋은 조건에서 떠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빅 테크(대형 IT기업) 등과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전통 은행업의 전망이 예전처럼 밝지만은 않다는 자각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은행에 따라, 근무 기간과 직급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현재 국내 시중은행의 부지점장급 인력이 희망 퇴직하면 특별퇴직금에 일반퇴직금까지 더해 4억∼5억원 정도를 받는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문혜현기자 moon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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