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판 대선 불복... 前대통령 지지자들, 대통령실·의회·대법원 난입
브라질에서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전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8일(현지 시각) 의회·대법원·대통령궁 등 입법·사법·행정 3부 기관 건물에 난입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군의 쿠데타를 촉구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기 정부 출범 1주일만에 위기 상황을 맞게 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군을 투입해 진압에 나서고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 처벌을 예고했다.
AP·로이터통신 등 외신과 CNN 스페인어판·브라질 TV 글로부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자이르 보우소나르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은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 연방 관구에 있는 의회에 난입해 시설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브라질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국기에 포함된 노란색·초록색의 옷을 맞춰 입은 시위대는 의회 앞의 바리케이드를 넘은 뒤 경찰의 저지를 뚫고 문을 부수며 건물 안으로 침입했다. 이어 집기류를 던지고 충격을 가해 건물 바닥을 파손시키는 등 폭력을 행사하며 의회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의장석에 앉아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들은 특히 의회 건물 지붕에 올라가 브라질 군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의미의 ‘개입’이라는 문구가 포르투갈어로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기도 했다.
시위대는 의회 난동에 이어 대통령궁과 대법원으로까지 몰려가 창문을 깨트리며 일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경찰은 뒤늦게 최루가스를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부 경찰과 보안요원은 폭행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군 병력까지 투입해 3부 기관 내부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날 폭동은 전임 보우소나르 전 대통령 지지자의 ‘대선 불복’ 시위였다. 앞서 작년 10월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은 ‘50.9%대 49.1%’라는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결선 투표에서 승리했다. 대선 과정에 부정선거 가능성을 제기했던 보우소나루는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채 침묵하다가 권력 이양 절차 개시를 승인했지만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았으며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도 불참했다.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브라질리아 주요 군부대 앞에 이른바 ‘애국 캠프’를 차리고 룰라 취임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선거 불복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부 극성 지지자는 테러를 모의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날 룰라 대통령은 작년 말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 아라라콰 지역을 방문하고 있어서 시위대와 직접 마주치지는 않았다. 룰라 대통령은 현장에서 폭동 사태를 보고받고 이들을 ‘광신도’, ‘파시스트’로 지칭하며 “모든 법령을 동원해 죄를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은 또한 이달 말까지 연방정부 차원의 직접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공격을 독려하는 듯한 연설을 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대법원장 역시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라질리아 연방 주지사는 이번 사태 책임을 물어 치안 총 책임자인 안데르송 토레스 안보장관을 즉각 해임했다. 토레스 장관은 전임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 장관을 지낸 인사다.
브라질에서 벌어진 유례없는 폭동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일제히 이를 규탄하며 급작스런 위기를 맞은 룰라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특히 지난 대선 비슷한 상황을 겪은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민주주의와 평화적 권력 이양에 대한 공격을 규탄한다”며 “우리는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브라질 국민의 의지는 절대 훼손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며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폭력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에서는 2020년 대선 과정에서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소송과 협박을 이어갔고, 의회가 이듬해 1월 6일 대선 결과를 승인하려고 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편, 이날 폭동과 관련해 우리 교민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브라질리아 소재 주브라질 한국대사관은 이날 폭동과 관련된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브라질 내 5만여명의 교민 중 브라질리아에는 100명 미만이 거주 또는 체류하고 있고, 대부분 교민은 상파울루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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