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중국 올해부터 핵무기 100기 만들 원자로 가동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1. 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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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젠성에 고속증식로 2기 가동
핵무기급 플루토늄 연간 400㎏ 생산
전력, 핵무기 동시 노리는 전략
한국은 폐연료 재활용할 고속로 연구
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지 기사에 실린 일러스트. 중국을 상징하는 사자상 뒤로 고속로 설계도가 보인다. 고속로는 고속 중성자로 일반 원전에 쓰지 못하는 우라늄238을 핵분열이 가능한 플루토늄239로 바꾼다. 이 플루토늄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핵무기 연료로 쓸 수도 있다./SPECTRUM

중국 자금성을 지키는 사자상 뒤로 원자로의 도면이 보인다. 원자로에서 나온 붉은 열이 파란색의 물을 증기로 바꿔 전기를 생산한다. 그리고 핵무기를 만들 원료까지 나온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지는 지난달 29일 “중국의 새로운 고속증식로가 올해부터 전기와 함께 매년 핵폭탄 100개를 만들 플루토늄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자 그림은 바로 스팩트럼지 기사에 실렸다.

스펙트럼은 국영 핵공업집단공사(CNNC)가 중국 남동부 푸젠성의 창비아오섬에 고속중성자증식로(fast-neutron nuclear breeder reactor) 2기를 건설했으며, 1기는 올해부터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고, 다른 1기는 2026년 전력망에 연결된다고 밝혔다.

◇매년 핵무기 100기용 핵연료 생산

창비아오섬의 고속중성자증식로는 CFR600이다. 원형은 러시아에서 35년간 가동한 고속증식로인 BN600이다. 이 때문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섞인 혼합연료(MOX)도 러시아가 공급한다. 세계원자력협회 뉴스지는 지난 4일 러시아 국영원전기업인 로사톰의 핵연료 제조 자회사인 TVEL이 중국 CFR600에 들어갈 핵연료를 선적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CFR600은 이름대로 6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중국 전체 원전 발전량의 약 1%에 해당한다. 전력량은 미미해 보여도 다른 면에서 중국에 무엇보다 중요한 원자로이다. 각각의 원자로는 연간 무기급 플루토늄을 200㎏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핵탄두 50개를 만들 수 있다. 창비아오섬의 원전이 해마다 핵무기 100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서방세계는 중국이 군사력증강을 위해 원전을 가동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물리학자이자 핵정책 전문가인 프랭크 폰 히펠 교수는 스펙트럼에 “중국은 현재 핵무기 비축량을 늘리고 있다”며 “이 원자로의 목적 중 하나도 병력증강을 위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이 핵미사일용 지하 격납고 겸 발사대인 사일로를 추가 건설하는 일도 같은 맥락이란 것이다.

중국 고속로가 핵무기 연료 생산용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장 후이 하버드대 벨퍼 센터 연구원은 중국이 핵무기급 플루토늄이 필요하면 폐연료봉을 바로 재처리하는 게 더 쉬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원자력협회 뉴스지는 지난 4일 러시아 국영원전기업인 로사톰의 핵연료 제조 자회사인 TVEL이 중국 CFR600에 들어갈 핵연료를 선적했다고 보도했다./Rosatom

◇물 대신 액체금속 냉각재 사용

주목적이 무엇이든 칭바이오섬의 고속로는 핵무기 원료를 생산할 것이다. 이 고속로가 전기와 함께 핵무기 원료까지 생산하는 것은 기존 원전과 다른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원자로는 중성자가 우라늄과 충돌하면서 핵분열될 때 나오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 국내외에서 전력생산에 주로 쓰이는 원자로는 경수로(輕水爐)이다. 핵분열이 지나치지 않도록 냉각재인 물로 중성자 속도를 줄인다. 이런 ‘저속’ 중성자는 우라늄 동위원소 중 원자량이 235인 우라늄235만 핵분열시킬 수 있다. 우라늄235는 천연 우라늄 중 0.7%에 불과해 농축과정이 필수적이다.

반면 고속로는 원자로에 쓰지 않던 우라늄238을 연료로 쓴다. 고속로는 물 대신 액체 금속을 냉각재로 쓴다. 중성자는 액체 금속에서 속도가 줄지 않는다. 이런 ‘고속’ 중성자가 우라늄238을 때리면 핵분열이 가능한 플루토늄239가 된다. 원전에서 나오는 폐연료에는 우라늄238과 플루토늄239가 들어있다. 고속로는 이것을 태워 다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플루토늄239가 핵무기의 원료가 된다는 점이다. 고속로에서 플루토늄이 투입한 연료보다 나중에 더 많이 나오면, 즉 전환비가 1보다 크면 핵연료가 늘어난다고 ‘증식로(breeder)’라고 한다. 전환비가 1보다 작으면 ‘연소로(burner)’라고 한다. 칭바이오섬의 CFR600은 처음 투입되는 것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어 증식로라고 한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CFR600은 노심(爐心)에 전력생산용 혼합연료를 넣고 주변을 둘러싼 블랭킷에도 우라늄238을 넣어 투입량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다”며 “서방이 중국의 CFR600이 전력생산보다 핵무기 원료 생산용이라고 의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스베르들롭스크주 자레치니에 있는 벨로야르스크 원자력발전소에 건설된 소듐고속증식로인 BN800./Rosatom

◇미국, 일본은 포기하고 러시아, 중국만 추진

고속로는 1958년 옛소련의 과학자가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경수로에서 나오는 폐연료를 다시 태울 방안으로 제시했다. 강대국들은 원전 폐연료를 산성용액으로 녹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폐연료를 고속로에서 바로 태우면 이런 재처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독일도 고속로 개발에 나섰지만 서방에서 현재 가동 중인 고속로는 없다. 나트륨이 물이나 공기와 닿으면 폭발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몬주 고속로는 1991년 시운전에 들어갔지만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다가, 본격 가동에 들어간 1995년 나트륨 유출사고로 화재가 발생한 후 가동이 중단됐다. 일본은 2016년 몬주 고속로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인도, 러시아는 여전히 고속로를 개발하고 있다. 인도는 시험로 단계이지만, 러시아는 이미 고속로 2기를 운영 중이다. 중국은 베이징 인근에 20㎿ 용량의 시험로를 세웠지만 전력망에 연결하지는 않았다. 이번 고속로는 실제 전력망에 연결된 실증로 단계이다. 스펙트럼에 따르면 중국은 곧 1000㎿ 용량의 상용 고속로를 건설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서방 세계도 최근 다시 고속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원전 폐기물 처리와 핵무기 전용 차단이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2001년부터 미국과 프랑스, 한국 등 13국이 나트륨(소듐)을 냉각재로 쓰는 소듐냉각고속로(SFR, Sodium Fast Reactor) 중심의 4세대 원자로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나트륨 폭발을 막을 안전기술이 발전한 것도 고속로 연구에 도움을 줬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세운 테라파워는 345㎿ 용량의 SFR을 개발하고 있다. SK그룹도 여기에 투자했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로봇팔로 방사능 차폐장치 내부에 있는 모의 폐연료봉을 조작하고 있다./한국원자력연구원

◇국내에선 파이로 연구와 연계

우리나라도 고속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1차관은 지난 5일 ‘2023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지정한 차세대 원전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중 하나로 SFR을 제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미국과 함께 원전 폐연료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을 개발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전기로 핵분열이 가능한 물질을 분리하는 건식 처리법이다. 습식 처리처럼 플루토늄만 골라 뽑지 않고 다른 물질과 함께 통째로 분리해 핵무기로 전용할 우려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테면 연탄재에서 미처 타지 못한 부분을 모아 다시 연탄을 만드는 셈이다. 황일순 명예교수는 “파이로프로세싱으로 뽑아낸 물질을 다시 태울 원자로가 고속로”라며 “우리나라는 폐연료 물질로 전기를 생산하고 방사성 물질을 줄이는 것이 목적인 연소로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우라늄 활용도를 100배 높이고 방사성 독성은 1000분의 1로 줄일 기술로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폐기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개발 예산이 328억원이었지만 2021년에는 0원이었다. 새 정부 들어 다시 사용후핵연료처리기술 고도화 사업으로 2026년까지 35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에 168억, SFR에 182억원이 배정될 예정”이라며 “둘 다 국내 실증 기반 기술 확보를 위한 원천기술 개발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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