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물랑루즈’를 즐겨라,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몰라

정혁준 2023. 1. 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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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작 뮤지컬 국내서 아시아 초연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화려함 뒤에 감춘 인생과 예술을 보여주는 뮤지컬.’

지난달 16일 막을 올린 <물랑루즈!>는, 볼 때는 화려하지만 되새겨보면 인생과 예술을 그린 뮤지컬로 정의할 수 있다.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배즈 루어먼 감독의 동명 영화(2001)를 원작으로 2019년 처음 브로드웨이에 올린 뮤지컬 <물랑루즈!>는 2021년 미국 토니상 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 등 10관왕을 휩쓴 화제작이다. 이번에 아시아 초연으로 한국에서 개막했다.

작품 배경은 1899년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자리잡은 ‘빨간 풍차’라는 뜻의 클럽 물랑루즈. 파산 위기에 몰린 물랑루즈를 지키려는 스타 가수 사틴,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는 가난한 작곡가 크리스티안, 소유욕이 강한 몬로스 공작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무대와 객석은 파리에서 가장 화려했던 클럽 내부를 재현하기 위해 붉은빛 조명으로 감쌌다. 수천겹의 붉은 커튼이 객석 벽면까지 드리워져 있고, 관객 머리 위에는 샹들리에가 10개나 달려 있다. 좌우 벽면에는 물랑루즈를 상징하는 코끼리와 풍차 모형까지 갖춰놓았다. 마치 19세기 말 물랑루즈로 순간이동한 느낌을 받는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에선 매혹적인 차림의 앙상블 배우들이 나른하게 걸어 다니며 관객을 유혹하는 ‘프리 쇼’를 펼친다.

공연이 시작되면 크리스털이 촘촘하게 박힌 드레스를 입은 사틴이 그네를 타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해’를 부르며 등장한다. 의상이 조명에 반사돼 그야말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도록 연출했다. 오프닝부터 12분 동안 캉캉 춤과 노래를 이어가며 분위기를 띄운다.

화려한 쇼가 눈을 즐겁게 한다면, 익숙한 노래는 귀를 즐겁게 한다. 두곡 이상의 노래를 한곡으로 ‘매시업’한 노래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레이디 가가, 마돈나, 비욘세, 리애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70여곡을 들을 수 있다. 이들 노래에 얽힌 권리관계를 풀어내는 데만 1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원작 영화에도 쓰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레이디 마멀레이드’는 물론,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 레이디 가가의 ‘배드 로맨스’, 아델의 ‘롤링 인 더 디프’ 등 뮤지컬에 더해진 새 노래도 많다.

1부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노래 ‘엘리펀트 러브 메들리’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 퀸의 ‘플레이 더 게임’, 휘트니 휴스턴의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 등 20여곡을 잘게 쪼개 넣어 서로에게 빠져드는 사틴과 크리스티안의 감정 변화를 표현했다.

악동 이미지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엮어 만든 몬로스 공작의 주제곡 ‘심퍼시 포 더 듀크’,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탱고 스타일로 편곡한 ‘백스테이지 로맨스’도 들어볼 만하다.

1막이 화려한 쇼와 볼거리가 주를 이룬다면, 2막은 드라마를 강조한다. 사틴은 원작 영화보다 강한 캐릭터로 나온다. 재정난에 빠진 클럽 물랑루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는 부유한 후원자 몬로스 공작에게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야”라고 외친다.

<물랑루즈!>엔 로트렉이라는 이름의 공연 감독이 나온다. 실제 클럽 물랑루즈를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가 모델이다.

뮤지컬에서 로트렉은 물랑루즈의 재정 위기를 구하기 위해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공연을 연출한다. 하지만 후원자인 몬로스 공작은 사사건건 딴지를 건다. 로트렉은 뮤지컬의 주제인 ‘진실, 아름다움, 자유, 사랑’이라는 보헤미안 가치를 상징한다. 반면 몬로스 공작은 권력과 자본, 소유욕을 의미한다. 자유와 권력, 예술과 통제의 긴장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뮤지컬 <물랑루즈!> 포스터. 씨제이이엔엠 제공

물랑루즈라는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두 욕망은 계속 부딪힌다. 어찌 보면 물랑루즈는 우리 사회를 투영하는 것으로 읽힌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자유와 예술이 피어나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뮤지컬에서 사틴은 시한부 인생을 산다. 실제로 물랑루즈에서 공연하던 감독·배우·댄서들 역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언제 세상에서 사라질지 몰랐기에 그들은 물랑루즈에서 오늘을 즐겼다. 뮤지컬 <물랑루즈!>는 이렇게 얘기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오늘 인생을 즐겨라. 그게 보헤미안 라이프다.”

뮤지컬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3월5일까지 공연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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