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급하게 선임한 새 감독, 왜 망설이나…선수단은 “들은 바 없다”
[OSEN=화성, 이후광 기자] 수장이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급하게 신임 감독이 정해졌지만 아직 선수단은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신임 사령탑 선임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길래 이 같은 혼란이 발생하는 것일까.
김연경 복귀와 함께 인기구단으로 군림하던 흥국생명이 혼란에 빠진 건 지난 2일. 1위 현대건설을 맹추격 하고 있던 상황에서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이 동반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권순찬 감독의 경우 구단은 사퇴라는 용어를 썼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윗선의 경기 개입 논란 속에 억울하게 짐을 싸고 팀을 떠났다. 이후 5일 GS칼텍스전 감독대행을 맡았던 이영수 수석코치마저 “나 역시 떠나는 게 맞다”라는 입장을 밝힌 뒤 코치직을 내려놨다.
흥국생명은 빠르게 새 사령탑 선임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치 권순찬 감독이 물러날 것을 예상한 듯 불과 나흘 만에 선명여고 김기중 감독을 사령탑 자리에 앉혔다. 김기중 감독은 2018-2019시즌부터 4시즌 동안 박미희 감독 아래서 수석코치를 맡았던 지도자다.
흥국생명은 보도자료를 통해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도력을 겸비한 김기중 감독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김 감독이 빨리 선수단을 추슬러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신임 사령탑에 힘을 실었다.
김기중 감독 또한 “지난 4년간 동고동락했던 흥국생명에 돌아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출사표를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김기중 감독은 늦어도 발표 다음날인 7일부터 팀에 합류해 훈련을 지휘한 뒤 8일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 임했어야 했다. 그러나 8일 IBK전을 앞두고 흥국생명 구단이 감독 선임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8일 오전 “흥국생명이 감독 선임 업무를 마무리 못한 관계로 오늘 경기는 김대경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나설 예정이다”라고 발표했다. 감독을 선임하고도 감독대행의 대행으로 경기를 치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감독 없는 일주일을 보내면서 선수들의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건강하던 에이스 김연경이 장염 여파로 8일 경기서 첫 결장했고, 베테랑 리베로 김해란은 “이것저것 겹치다 보니 고참으로서 마음을 잡는 게 조금 힘들었다. (김)연경이 없는데 나도 이러면 후배들이 흔들릴 것 같아서 참고 했던 부분도 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문제는 새 사령탑의 합류 시기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8일 흥국생명 관계자는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바란다”라는 막연한 답을 내놨고, 김대경 대행은 “아직 신임 감독과는 이야기도 못해봤다. 상견례도 아직 하지 않아서 못 만났다. 감독님을 언제 만날지 등 구체적 일정에 대한 정보를 들은 바가 없다”라고 전했다. 김해란도 “감독님이 떠난 뒤로 알고 있는 부분이 없다. 지금은 그저 경기와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김기중 감독이 비난 여론에 시달려 감독직을 다시 반납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같은 배구인이 구단의 불합리한 처사로 팀을 떠났는데,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도의적인 측면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 실제로 여자부 타 구단 감독들은 흥국생명 프런트의 최근 납득 불가한 행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고령 사령탑인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이는 배구인을 무시하는 처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독 없이 4연승을 해낸 흥국생명은 오는 11일 인천에서 선두싸움의 분수령이 될 1위 현대건설전을 앞두고 있다. 감독 공석인 상황에서도 지난 두 경기는 팀워크만으로 GS칼텍스, IBK기업은행을 차례로 꺾었지만 현대건설의 전력은 다르다. 팀이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현대건설 특유의 집요한 약점 공략에 당할 수 있다. 흥국생명이 어떻게든 그 전까지 김기중 감독 선임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더 이상 감독을 선임하고도 감독대행의 대행으로 경기를 치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감독대행의 대행을 맡은 1987년생 어린 코치도, 김연경, 김해란 등 베테랑 선수들도 모두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구단의 무능 행정이 부른 대혼란 사태로 선수단과 팬들의 상처는 계속 깊어지고 있는 상황. 흥국생명이 언제까지 납득할 수 없는 행보로 죄 없는 선수들을 괴롭힐지 지켜볼 일이다. /backligh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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