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10년]④ 금융위기보다 커진 ‘깡통전세’ 우려…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

최온정 기자 입력 2023. 1. 9. 06:01 수정 2023. 1. 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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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경매로 나온 서울 은평구 구산동 다세대주택(U빌라)는 전세금 1억500만원이 감정가 1억300만원보다 높은 ‘깡통전세’ 주택이었다. 7차례나 유찰된 끝에 8회차 경매에서 임차인 전모씨가 2160만원으로 낙찰받았다. 전씨는 대항력이 있었지만, 시세보다 높은 전셋값을 지불하고 주택을 매수할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주택을 직접 낙찰받았다.

2012년 6월에 경매로 나온 남양주 호평 중흥S클래스 전용 121㎡ 아파트는 임차인이 대항력이 없어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임차인인 서모씨는 이 아파트의 시세가 5억원에 달했던 2008년 보증금 1억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근저당이 4억원가량 있었지만, 집값이 오르고 있던 탓에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4년 후 실거래가는 3억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경매에서 2억8300만원에 낙찰되면서 서모씨는 보증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 새로운 뇌관으로 부각한 전세대출… 갭투자·깡통전세 유발

10년 전 집값 하락기에 불거졌던 ‘깡통전세’ 우려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과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을 합친 금액이 매매가보다 높은 주택을 뜻한다. 전셋값보다 집값이 더 가파르게 하락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통상 전세금과 대출 금액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 깡통 전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재등장한 깡통전세는 코로나 이후 가파르게 오른 집값이 원인이 됐다. 2020년 2월 3.3㎡당 2712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21년 8월 4276만원으로 치솟았다. 공급물량 부족과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유지했던 0%대 기준금리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었다. 높은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전세계약을 선호하게 됐다.

그래픽=손민균

금융위기 직후나 지금이나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수요가 증가했다는 점은 유사하다. 전세수요가 줄면서 전세시장이 차갑게 가라앉은 것도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나 2008년 처음 도입된 전세대출 규모가 그간 크게 확대되면서 임대차 시장이 깡통전세에 취약한 구조로 재편됐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정부는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대출한도를 꾸준히 늘렸고, 소득·자산기준 등도 완화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2022년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규모(잔액기준)는 2012년 23조2000억원에서 2016년 52조원, 2019년 102조원, 2021년 180조원 등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과도한 대출로 시중에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전세가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인 2012년 1월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각각 54.3%, 56.6%에 불과했지만, 6년만인 2018년 1월에는 서울과 수도권 모두 70%를 넘어섰다. 전세가율이 소폭 내린 2019년에도 서울은 59%, 수도권은 68%대를 유지했다.

임대보증금을 끼고 집을 매수하는 ‘갭투자’도 기승을 부렸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서울에서 거래된 전체 주택 중 갭투자 비율은 14.6%에 불과했지만, 2021년 41.9%까지 치솟았다. 높아진 전세가율이 깡통전세를 양산하고, 이를 노린 갭투자가 기승을 부리면서 깡통전세 우려가 더욱 확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래픽=손민균

◇ 월세시장으로 재편되는 임대차시장… “올해도 전세시장 약세 지속”

과열됐던 전세시장은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차갑게 식고있다. 전세대출 이자가 7%를 넘어서면서 높은 이자 부담을 떠안을 임차인이 감소한 것이다. 금리 인상 여파로 매매가격이 떨어지면서 깡통전세 위험까지 현실화되자 시장에서는 전세거래가 빠르게 실종됐다.

임차시장은 월세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작년 12월까지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9만4926건(1월 2일 기준)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량 22만4393건 중 42.1%를 차지했다. 월세 비중은 2020년 31.4%에서 2021년 38.5%로 증가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40%를 넘었다.

금융위기 직후에도 월세 선호현상이 나타났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깡통전세 우려가 커졌던 지난 2011년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 비중은 18.4%에 불과했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있었던 2015년까지 이 비중은 34.8%로 급증했지만, 이후 전세거래가 활발해지면서 2019년까지 28.1%로 감소했다. 그러나 3년만에 14%포인트 넘게 커졌다.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거래 물건을 안내하는 안내지가 붙어 있다./연합뉴스

월 1000만원이 넘는 고가 월세 계약도 증가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월 1000만원 이상 월세계약은 132건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54건) 2.4배로 증가한 수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월세거래가 집주인의 경제적 이득으로 인해 이뤄졌다면, 지금은 세입자의 경제적 이득과 생존본능이 주 원인”이라면서 “대출금리가 오르고 깡통전세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면서 월세를 찾는 임차인이 증가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전세시장이 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적으로 입주물량이 증가하면서 전세시장의 초과공급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30만2075가구(413개 단지)로, 작년(25만6595가구)보다 18%가량 증가한다.

특히 서울 강남3구에서는 ▲개포 프레지던스자이 3375가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6072가구 ▲래미안원베일리 2990가구 ▲신반포메이플자이 3307가구 등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입주물량이 많으면 단기적으로 전세물량이 많아질 수 있는데, 그동안 쌓인 전세물량이 소화되지 못하고 있어 전세시장 약세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올해 상반기 인천·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모습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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