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희집 서울대 교수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시대… 원전 강국 韓에겐 기회”
“현재 지구에는 수백년만에 가장 큰 에너지 전환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 에너지 산업은 인류가 영위하는 산업 중 가장 크며,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이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갖춘 한국이 수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다.”
김희집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에너아이디어즈 대표
기후 변화 해결과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세계는 바야흐로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 국가 대부분이 온실가스를 다량 발생시키는 화석연료를 대폭 줄이고 무탄소 에너지를 늘리고 있으며, 기업들은 2050년까지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RE100′ 캠페인에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김희집(61)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는 9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에너아이디어즈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가 한국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 기술을 갖춘 한국이 적극적으로 세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35년째 에너지 산업을 연구해온 에너지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이수한 그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엑센츄어(Accenture)에 입사해 뉴욕에서 10년간 에너지산업 부문의 자문을 수행했다. 이후 한국 및 아시아 지역 대표로 발령돼 16년간 근무한 뒤 지난 2015년 은퇴해 에너지 컨설팅 업체 에너아이디어즈를 설립했다.
김 교수는 “에너지의 93%를 수입하고 있는 한국은 에너지 안보에 매우 취약하다”며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여 에너지 자립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에너지 지형을 크게 바꾸고 있다.
“지난 1970년대에 2번에 걸친 오일 쇼크가 있었다. 당시 석유 가격이 단번에 5배나 오르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이번 전쟁을 ‘제3의 에너지 쇼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전쟁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순간적으로 20배까지 치솟으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유럽뿐만 아니라 여러 천연가스 수입국들의 전력 요금이 상당히 오른 상태다. 향후 2~3년간은 가스 공급으로 인한 쇼크가 세계 에너지 시장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다.”
─ 한국은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아 에너지 안보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작년 한국은 14년만에 무역 적자를 냈고, 그 규모가 60조원이다. 그런데 작년 한국의 에너지 수입만 200조원이 넘는다. 이처럼 에너지의 93%를 수입하고 있는 한국은 에너지 안보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발 에너지 위기는 곧 한국의 에너지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자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 에너지 자립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화석 에너지에 기반한 발전 비중은 낮추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높여야 한다.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는 34.7%를 석탄 발전에, 29.2%를 LNG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원자력은 27.4%, 재생에너지는 7.5%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산업통상자원부는 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32.4%,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실현된다면 에너지 자립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정부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줄이며 궁극적으로 탈원전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는데.
“국가의 에너지 계획은 엄밀한 과학적 논의를 거쳐 결정돼야 한다. 특히 공급의 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이라는 세 요소를 모두 따져야 한다. 그런데 지난 정권은 원자력이 갖고 있는 일부 단점만을 크게 부각하면서 탈원전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가장 중요한 정책이 정치적 동기에 의해 감성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에너지는 어디까지나 과학의 영역에 있어야 하지, 정치적 목적에 휘둘려선 안 된다.”
─ 이번 정부는 탈원전 기조를 폐지하고 원자력 발전 비중을 다시 높이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작년 10월 국제에너지기구가 주관하는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각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시 원자력 산업을 키우는 것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사실 지난 5년간 한국 원전 생태계가 많이 붕괴했다. 원전과 관련한 일감이 사라지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인력을 감축하고, 또 문을 닫았다. 다행히 이번 정부가 올해부터 원자력발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하면서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도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 한국의 원전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가.
“세계 1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원전 건설 부문에서는 단연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 이 분야 강국은 미국과 프랑스였는데, 최근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도 2~3배로 뛰는 등 실패 사례가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프랑스의 절반 수준 비용으로 훨씬 빠른 기간에 건설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다만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특히 중국은 동해안 지역에 원전을 다수 건설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 다행인 점은 세계 경제가 블록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타국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한국엔 유리한 상황이다.”
─ 현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향후 수출 가능성이 높은 국가가 있다면.
“지금으로썬 폴란드와 튀르키예가 유력해 보인다. 특히 폴란드와는 현재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다음 협상 단계를 진행 중이다. 미국과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잡음이 있기는 하지만, 잘 해결된다면 시일 내 좋은 소식이 들릴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카자흐스탄, 네덜란드, 필리핀 등이 모두 한국 원전 수입을 검토하고 있다.”
─ 에너지 사업을 수출하는 데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텐데,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에너지 수출은 단순히 돈을 받고 시설을 지어주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와 국가 간의 경제 동맹 관계를 맺는 고도의 정치·외교적 과정에 가깝다. 특히 수입국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금융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 수출은 방산, 인프라 등 다른 분야의 수출과 연계돼 있다. 일례로 폴란드의 경우 방산 협력을 기반으로 원전 수출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게 된 사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기술과 관련한 업무를 진행할 뿐, 실질적인 수출은 정부가 진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통령과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해 11월, UAE를 방문해 바라카 원전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을 두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큰 감동을 받았다. 바라카 원전은 무려 24조원 규모의 거대한 사업이다. 단순 계산해봐도 3000만원짜리 자동차를 80만대나 팔아야 하는 엄청난 액수다. 이처럼 원전 수출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글로벌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 원전 수출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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