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이후 3년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3이 이달 8일(현지시간) 나흘간의 대장정을 마감했다. 삼성과 LG, SK, 롯데 등 550개 한국 기업을 비롯해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 기업까지 전 세계 173개국에서 3200여개사가 참가해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았다. 미국과의 갈등 탓에 대거 빠져나간 중국 업체의 빈자리는 느낄 수 없었다. 대신 초연결과 고객경험, 탄소중립을 전면에 내세운 삼성, LG, SK이 꾸민 화려한 부스와 시장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메시지 덕분에 코로나 전보다 더욱 활기차고 놀라운 경험의 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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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고객경험 강화...일상에 스며든 스마트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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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CES의 특징은 당장 눈 앞에서 '헉' 소리가 절로나게 하는 드라마틱한 혁신보다는 일상에 잔잔히 스며들어 인류의 삶을 바꾸는 '캄 테크(Calm Technology)'의 스토리텔링이 전체적인 전시의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수년전부터 CES의 중심으로 떠오른 미래 모빌리티 분야는 CES 2023을 거치며 확실한 혁신의 주체로 자리 매김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던 자리다.
'Be in it'(빠져들어라)를 슬로건으로 내건 CES 2023은 △오토모티브 △디지털 헬스케어 △웹 3.0 △메타버스 △지속가능성 등 5가지 테마로 한층 진화한 모빌리티, 메타버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휴먼 테크 등의 혁신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들이 모여있는 LVCC 센트럴 홀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앙을 차지했다. 두 회사 모두 다른 업체들보다 월등히 큰 크기의 부스를 차지하면서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삼성전자의 이번 CES 부스의 테마는 '초연결'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캄 테크 기술로 개인별 맞춤형 경험을 제공해 더 나은 미래, 세상의 바람직한 변화에 앞장선다"는 비전을 고객들에게 소개하는데 공을 들였다. 예년과는 달리 제품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탁월한 기술력과 함께 미래 인류의 삶을 '초연결' 철학을 소개했다. LG전자는 선없는 OLED TV 등 고객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제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초연결 사회의 달라진 일상을 직접 체험하고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과거 1000여개 기업이 넘었던 중국기업 부스는 올해 절반도 되지 않는 규모로 줄었다. 샤오미, 화훼이 등이 불참하면서 TCL, 하이센스 정도가 눈에 띄었다. LG스타일러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비스포크 가전의 모양새를 교묘하게 따라하는 등 여전히 카피캣(Copy Cat)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눈에 거슬렸으나 확실히 과거에 비해 한단계 진보한 기술력을 뽐냈다. 반면 소니, 파나소닉, 미츠비시 등 일본 전자기업은 여전히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한차원 높은 기술력과 산업경쟁력, 엔터테인먼트 역량을 토대로 게임, 메타버스, 미래차 부문에서 여타 기업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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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모빌리티의 대두, 입지는 되려 좁아진 완성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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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CES에서도 테크 기업과 완성차 업계간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졌다. 하지만 모빌리티의 미래상을 제시한 건 완성차 업계보다는 테크 기업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지난 CES에서 현대차그룹을 필두로 완성차 업계에서 로보틱스·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으로 이슈를 이끌었지만, 이번엔 현대차그룹·테슬라는 불참하고 폭스바겐그룹은 전기 세단 ID.7 위장막 모델과 자사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 카리아드가 등장한 게 전부였다. BMW·스텔란티스의 콘셉트카 공개로 그나마 자존심을 지켰다.
반면 테크 기업 진영에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5를 탑재한 전기차 '아필라'가 등장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오토의 개선 모델, 아마존은 인공지능(AI) 알렉사가 적용된 양산차 모델을 공개했다. 그러나 소니는 콘셉트카에 대한 상세 제원을 공개하지 않았고, 구글·아마존의 전시품 모두 사용자의 편의성은 향상 시켰으나 '탈 것'에 변화를 주진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전장 부품으로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테크 기업의 완승이라고 볼수 있다. 카메라, 레이더 등의 센서와 머신 러닝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인지 수준을 측정하고 상태 변화를 파악해 최상의 운전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하만 레디케어'를 선보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보쉬, 파나소닉 등이 핵심 모빌리티 역량을 자랑했다. 이들은 자율주행의 기반이 되는 카메라, AI반도체, 디스플레이, 센서 등의 분야에서 놀라운 혁신을 보여줬다. 미래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되려 이들 테크기업이 제시하는 모습이었다.
국내기업 한 관계자는 "이전 CES와는 달리 헉 소리나는 혁신제품보다는 미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라면서 "조용하게 일상에 스며들어 서서히 인류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는 첨단 기술의 진화 방향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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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만 있는것 아냐" CES 빛낸 K-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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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3에서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우리기업은 삼성, LG가 전부는 아니다. SK그룹과 HD현대, 롯데, 서울반도체 등도 메인 전시홀에 부스를 꾸렸고, 서울시 등 지자체, 그리고 350개가 넘는 스타트업들이 라스베이거스를 수놓았다.
SK그룹은 이번 CES 2023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시대로의 전환을 '동행'이란 주제로 풀어냈다. 기술·제품 중심이 아닌 방문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 글로벌 무대에서 친환경 의지를 보여줬다.
HD현대는 이번이 두 번째 참가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모빌리티의 비중이 높아지는 CES에서 해양 모빌리티 기술력과 비전을 선보였다. 지상에만 국한됐단 차세대 모빌리티 영역을 바다로 넓혔다는 데서 의미가 있었다. 기존에 참여하던 기업들보다 적은 규모의 부스를 꾸렸지만 미국 공영방송 NBC를 포함한 많은 현지인들이 주목하며 CES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전세계 스타트업들이 한자리에 모인 CES 2023 유레카관의 주인공은 단연코 한국 스타트업이었다. 350개 스타트업이 참가해 이중 100여개가 넘는 기업들이 CES 2023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 중 △그래핀스퀘어 △닷 △버시스 △지크립토 등 스타트업 4개사는 혁신상 중 최고 영예인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라스베이거스(미국)=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라스베이거스(미국)=김도현 기자 ok_kd@mt.co.kr, 라스베이거스(미국)=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라스베이거스(미국)=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