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범의 정책 플랫폼] 국민이 꿈꾸는 세상을 위하여/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2023. 1. 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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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거창한 경제성장 아니라
실질적 살림살이 나아지길 희망
원인 진단 잘해야 좋은 정책
왜곡된 분배구조부터 풀어야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잊힌 옛말이 된 듯하다. 지난 3년을 지나며 코로나가 일상에 내려앉았다. 이태원 참사에 북한과의 극한 대립, 협치가 상실된 불안정한 정국과 날로 어려워지는 살림살이가 사람들의 마음을 심연으로 깊숙이 가라앉힌 듯하다. 더욱 힘든 건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주요한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정책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 정의가 잘못되고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면 그 해결책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예컨대 역대 정부들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광범위한 출산지원금 정책을 펼쳤지만 예산낭비 논란만 남겨 둔 채 저출산이라는 상황은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새로운 세상을 위한 첫 단추는 사회의 문제와 근본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해에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2023년 현재를 사는 우리 국민이 원하는 삶과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물론 많은 국민이 물질적으로 아무 걱정 없이 풍요롭게 사는 것을 희망한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동시에 그것이 대다수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현재의 고용 상태가 안정되고 소득이 조금이라도 오르며 자산과 소득 불평등의 격차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원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이중적인 노동시장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서열화된 대학교육이 하루속히 정상화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후손만큼은 조금 더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수출이 많이 된다고 해서 내 삶이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대기업은 수출 증대를 통한 이익 확대에 큰 관심을 보이겠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직장인들은 다르다. 힘들지만 보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약간이라도 상승한 소득으로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기를 원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성장만이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경제가 5% 성장하면 국민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 얼마만큼 나아질까. 새로 창출된 부가가치가 전 사회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배분된다면 5%만큼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은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여기에 경제성장은 물가상승을 동반한다. 5%의 경제성장은 국가 입장에서는 엄청난 실적이지만, 서민 입장에서는 헛장사일 가능성이 높다. 2021년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명목소득은 약 4028만원으로, 이를 4인 가구로 환산하면 약 1억 6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실제 2021년 4분기 우리나라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64만원으로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5570만원이 된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명목소득과 실제 평균소득의 차이는 1억원이 넘는데, 그만큼 사회적으로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현재의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만으로도 서민의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수출 증대가 아니라 소득재분배 강화를 통한 소득상승, 고용안정과 같은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경제 저성장이 아니라 국민의 팍팍한 살림살이이며, 원인은 수출 부진이 아니라 분배구조의 왜곡에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 내지 못하는 정책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민다 해도 정책의 효과는 국민이 꿈꾸는 바를 조금이라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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