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빌라왕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
자본 없이 갭투기만으로 소유한 다수의 빌라를 악용해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전세사기범, 이른바 ‘빌라왕’에 대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수도권의 빌라, 오피스텔 1139채를 보유하다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내주지 않고 사망한 빌라왕(경향신문 2022년 12월12일)을 비롯해 화곡동의 283채 빌라왕(2023년 1월4일), 경기도의 3493채 빌라왕, 광주의 208채 빌라왕….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대규모로 사기를 계획하는 ‘왕’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채 규모의 ‘귀족’ 건물주에 의한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두세 채의 집을 소유한 임대인에게서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즐비하다. 위기는 이미 예고되었다. 2021년 한 해 동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보증사고는 무려 2799건으로 피해액만 5790억원에 이르고, 2022년 5월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108%를 넘기도 했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전세가가 매매가를 상회하자, 전세금 미반환 사고는 조직적인 ‘사기’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적인 경제 현상이 되었다.
마녀사냥식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HUG의 전세보증보험을 향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전세금 사고를 내도 세입자에게 대신 반환해주는 보증보험이 있으니, 투기꾼들이 전략적으로 악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쓰게 방치하더니, 이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유일하게 보호하고 있던 보증보험이 문제라는 식이다.
깡통전세, 전세사기, 빌라왕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보증금을 신용과 담보 없이 사적 금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전세제도 자체에 있다.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릴 때, 개인 신용도나 정부 정책에 따른 한도 제한이 있다 하여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부동산 이해관계만 얽히면 정책은 무력했다. 가령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상황에 대한 경고만 명확했어도 피해는 최소화되었겠지만, 방관과 방치만이 지속되었다. 결국 전세금은 투기의 종잣돈이 되어 다주택자의 부동산 거품 속에 매몰되어 갔다.
전셋집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화와 자산 축적에 분명 큰 역할을 해왔다. 깡통전세가 문제라고 해서 당장 전세제도를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더더욱 세입자의 주거권과 직결되는 보증금에 대한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전세가율에 대한 규제, 전세금 미반환 사고를 일으킨 주택에 대한 국가의 매입 등 여러 해법이 있었다. 다만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거나 건설경기 위축으로 기업 재정이 어렵고 HUG의 적자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미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어려움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자. 그곳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살고 있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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