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사업자 주택 71만 가구 중 38만 가구가 ‘깡통전세’ 위험
전세 보증금 반환 보험에 가입한 임대 사업자의 주택 71만 가구 중 절반 이상이 보증금·대출 등 부채가 집값의 80%를 넘는 ‘깡통 전세’ 위험 주택으로 나타났다. 최근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주택은 집주인이 집을 처분해도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 마련이 어렵다. 세입자는 전세 보증 보험이 있어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낮지만, 보증 기관의 재무 부담이 급증하고 있어 자칫 보증 중단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8월부터 작년 11월까지 보증 보험에 가입한 국내 법인·개인 임대 사업자의 임대주택 70만9206가구 중 38만2991가구(54%)의 부채 비율이 80%를 넘었다. 이 주택들의 보증금 총액은 43조9039억원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통상 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 전세’ 위험이 큰 것으로 해석한다. 정부는 깡통 전세 세입자를 보호하고자 2020년 8월부터 임대 사업자의 보증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전세 보증 보험은 보증금 사고가 발생하면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우선 갚아주고 이후 집주인한테 돌려받거나 집을 처분해 돈을 회수한다. 집주인이 임대 사업자인 경우 의무적으로 보증 보험에 가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세입자가 수십만 원 수준의 수수료를 내고 직접 가입할 수도 있다. 보증 보험은 법정 소송을 제외하고는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비용이 좀 들더라도 가급적 가입하길 권유한다.
하지만 최근처럼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집을 경매에 넘겨도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최근 ‘빌라왕’ 전세 사기처럼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하면서 작년 한 해 HUG가 집주인 대신 돌려준 보증금은 9241억원에 달했다. 2018년 583억원에서 2021년 5040억원으로 3년 만에 8배가량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엔 2021년보다 83.4% 급증했다. HUG가 집주인에게 회수한 돈은 2021년 2114억원에서 작년 2179억원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보험금 지출은 급증하고 있지만 자금 회수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세 보증 보험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 큰문제는 전세 보증 보험 지출이 급증하면서 HUG 전체의 재무 건전성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HUG 보증 총액은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의 60배(倍)로 제한되는데, 작년 말 52.9배로 한도에 육박한 상황이다. 올해 말이면 59.7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HUG는 전세 보증 외에도 아파트 중도금 대출, 건설사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관련 다양한 보증을 다루고 있다. 보증 한도를 초과해 내년부터 새 보증이 중단되면 전세 세입자는 물론, 아파트 청약 당첨자와 건설사들까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HUG는 자본 확충 방안을 정부 관계 부처와 논의하고 있다. 확충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최소 1조원 증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HUG의 자본은 6조6113억원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보증 보험이 중단되면 전세 사기범들에게서 세입자들을 지킬 유일한 안전장치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공백이 없도록 관계 부처 협의를 서두르고, 보증을 너무 무분별하게 해 전세 사기에 악용되는 측면은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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