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지지 연설후 광주 친구에 “미워말라” 문자...돌아온 뜻밖의 대답은

박은식 의사·내과전문의,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2023. 1.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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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라, 두쪽 난 국민] [6]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대표

조국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2019년이었다. 역사 유적지 탐방을 함께하며 가끔 정치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의 단톡방에 조국을 옹호하는 ‘미남보존협회’ 그림 파일이 올라왔다. 많은 친구들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댓글을 올렸다. 하지만 나는 동조할 수 없었다. 의학 논문을 작성해 본 경험상 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단국대 논문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조민이 절대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톡방에 입시 비리가 분명하다고 적었다가 거센 공격을 받았다. 결국 나는 쫓겨나듯 단톡방을 나왔고 그 친구들과 인연을 끊게 됐다. 정치가 뭐길래 오랜 인연을 가진 친구들의 우정을 이렇게 끝내버린단 말인가? 허무하고 안타까웠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입시를 위해 사적으로 의대 교수를 만나 논문 작성을 부탁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뿐인가. 평범한 청년이 문준용처럼 귀걸이를 한 증명사진으로 공공기관에 지원하고, 추미애 의원의 아들처럼 군 복무 중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은 채 전화로 휴가를 연장시킬 수 있을까? 공정을 외치며 집권한 문재인 정권에서 이런 비리들이 밝혀지자 수도권에서는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내 고향 광주에선 이미 기득권이 된 민주당 정권에 여전히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어 안타까웠다. 또 많은 실정을 저지르고도 광주 시민들에게 광주 정신을 들먹이며 가스라이팅하는 민주당에 분노했다.

결국 나는 지난 대선 때 광주에서 국민의힘 유세 차량에 올라 문재인 정부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한 다음 왜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지 연설했다. 그리고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는 제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십니다. 호남인들이 오직 김대중에게만 붙였던 ‘슨상님’이라는 칭호를 전과 4범한테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인데요. 여기 계신 광주 시민들 다 저랑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 아니겠습니까?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면 되겠습니까? 그래도 저희 어머니한테 꼭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엄마, 저 의대 보내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이번만큼은 아들 믿고 윤석열 한 번만 찍어줘. 사랑해 엄마!”

듣는 이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감정적인 연설을 한 이유가 있다. 5·18을 직접 겪었던 광주의 내 부모님 세대 어르신들은 전남도청 광장에서 피 흘리는 시체를 목격했다. 그리고 3당 합당으로 호남이 고립되면서 지역 차별도 겪었다. 이분들에게 아무리 이성적으로 정권 교체의 정당성을 설명해도 감정 깊숙이 뿌리내린 정서를 극복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로서 어머니의 감정에 호소했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2번’을 찍었다.

광주 친구들에게 내 연설 영상을 보내려다 한참을 망설였다. 친구들과 인연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양해를 구하는 글을 먼저 올렸다. ‘나 광주 내려가서 윤석열 지지 연설해븟다. 요런 짓 한다고 날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희들은 나랑 생각이 다른 거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 그래도 우리 오래 함께한 인연 봐서라도 내 연설 끝까지 봐줬으면 좋겠다.’ 영상을 보내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친군디 니를 미워할 이유가 있겄냐?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는 것이제. 잘 봤다. 고생했다.’ 걱정했던 내가 머쓱해질 정도로 고마웠다. 물론 이후 광주 친구들에게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정치적 양극화 시대에 잠시나마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청산 대상으로 지목해버린다면 갈등은 더 증폭된다는 것, 크게 보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한다면 함께하고 이를 부정한다면 먼저 사실을 제시하며 설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 정치적 신념보다 오래 함께한 인연이 더 중요하지 않나? 우리가 정치인은 아니지 않나? ‘뭣이 중헌디?’ 생각이 다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집단에 매몰되지 않고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적 양극화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광장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시위 중이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엔 정치적 신념이 다른 친구들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하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 건 어떨까? 나도 광주에 계신 어머니께 안부를 전하고 정치 언쟁으로 멀어진 역사 단톡방 친구들에게 연락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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