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권력, 외로운 영혼을 품으라
정용관 논설실장 2023. 1. 9. 03:03
각자도생의 세상, ‘외로움’ 점점 커져… 정치에 대한 敵意 위험 수위 넘어
‘아픈 마음’ 악용하는 나쁜 정치 횡행… 국가 보살핌 받는다는 마음 갖게 해야
‘아픈 마음’ 악용하는 나쁜 정치 횡행… 국가 보살핌 받는다는 마음 갖게 해야
어느 사상가는 “우리는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다. 격동의 세계, 힘없는 개인에 대한 통찰이었다. 오늘날도 무슨 시대라는 말은 많지만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라는 말만큼 가슴에 와닿는 표현은 찾지 못했다. 다만 ‘외로움의 시대’라는 진단엔 눈길이 간다.
“행복의 결정적 요인은 부(富)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다.” 수십 년째 인생 연구를 해오고 있는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대 교수가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밝힌 행복 비결이다. 이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점점 심각해지는 외로움, 그에 따른 파괴적 분열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더 심화시켰지만 그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30% 가까운 사람들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통계가 여럿 있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그 비율은 높아질 것이다. 외로움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문제는 점점 살벌해지는 세상에서 따뜻한 관계를 맺을 역량도 수단도 없는 이들은 늘어가고, 방송이나 소셜미디어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연결 사회, 외로움의 문제에 천착한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가 ‘고립의 시대’에서 설파했듯 외로움은 개인의 ‘쓸쓸한 기분’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이 책에는 생쥐 얘기가 나온다. 어린 생쥐를 우리 안에 한동안 가둬놨다가 그 우리에 다른 생쥐를 집어넣었더니 ‘침입자’를 마구 물어뜯더라는 것이다. 자기보존 본능, 외로움과 적대감의 상관관계에 대해 섬뜩한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숲속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한 적이 있나? “외로운 정신은 언제나 뱀을 본다.” 나아가 ‘뱀을 보는’ 이들은 포퓰리스트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물이라는 게 허츠의 진단이다.
외로움의 문제는 이처럼 정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정치의 저변을 잠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이나 청소년 고독사, 높은 자살률 등 사회면 기사 차원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모든 게 정치 문제냐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요즘 점점 극렬해지는 진영 대결, 온갖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살벌한 댓글과 독설이 횡행하는 현실을 보라. 국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 이들의 정치에 대한 적의(敵意)는 상상 이상이다. 누군가 내 아픈 구석을 긁어주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극렬 지지자’ ‘정신적 노예’를 마다하지 않을 이들이 적지 않다. 외로움으로부터의 탈출, 어딘가 소속돼 있다는 연대감,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위해…. 기이한 정치 팬덤, 이른바 개딸이니 양아들이니 하는 것들도 어쩌면 외로운 영혼의 탈출구가 아닐까.
어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지만 어떤 외로움은 정치 문제고 사회 문제다. 특정 계층, 집단에 만연한 외로움이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맞물릴 때 무시할 수 없는 부정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20, 30대 젊은층의 외로움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외로운 그들은 스스로 침잠하든가 아니면 분노의 대상을 찾아 나선다. 또 누군가는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척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혐오와 반목을 부추기고 특정 대상을 악마화하는 데 동원하려 한다. 건전한 공론의 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극우 극좌 유튜버들에 여론이 휘둘리는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진실이 뭔지, 팩트는 뭔지 관심 없다.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더 심해졌을 외로움의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같은 행정의 영역으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다. 외로움이란 가스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이 좁은 골목길에서 죽었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갈 때 느끼는 부모의 외로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참사까진 아니라도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번지는 건 위험하다.
새해,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권력은 저 멀리 범접할 수 없는 성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권력자는 고독하다. 고독은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고통이다. 각자도생의 세상,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배제된 이들이 다수다. 그들의 외로움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선한 척하는 권력은 위선이다. 그래도 권력, 따뜻한 말로라도 외로운 영혼을 품어야 한다.
“행복의 결정적 요인은 부(富)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다.” 수십 년째 인생 연구를 해오고 있는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대 교수가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밝힌 행복 비결이다. 이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점점 심각해지는 외로움, 그에 따른 파괴적 분열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더 심화시켰지만 그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30% 가까운 사람들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통계가 여럿 있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그 비율은 높아질 것이다. 외로움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문제는 점점 살벌해지는 세상에서 따뜻한 관계를 맺을 역량도 수단도 없는 이들은 늘어가고, 방송이나 소셜미디어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연결 사회, 외로움의 문제에 천착한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가 ‘고립의 시대’에서 설파했듯 외로움은 개인의 ‘쓸쓸한 기분’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이 책에는 생쥐 얘기가 나온다. 어린 생쥐를 우리 안에 한동안 가둬놨다가 그 우리에 다른 생쥐를 집어넣었더니 ‘침입자’를 마구 물어뜯더라는 것이다. 자기보존 본능, 외로움과 적대감의 상관관계에 대해 섬뜩한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숲속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한 적이 있나? “외로운 정신은 언제나 뱀을 본다.” 나아가 ‘뱀을 보는’ 이들은 포퓰리스트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물이라는 게 허츠의 진단이다.
외로움의 문제는 이처럼 정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정치의 저변을 잠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이나 청소년 고독사, 높은 자살률 등 사회면 기사 차원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모든 게 정치 문제냐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요즘 점점 극렬해지는 진영 대결, 온갖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살벌한 댓글과 독설이 횡행하는 현실을 보라. 국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 이들의 정치에 대한 적의(敵意)는 상상 이상이다. 누군가 내 아픈 구석을 긁어주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극렬 지지자’ ‘정신적 노예’를 마다하지 않을 이들이 적지 않다. 외로움으로부터의 탈출, 어딘가 소속돼 있다는 연대감,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위해…. 기이한 정치 팬덤, 이른바 개딸이니 양아들이니 하는 것들도 어쩌면 외로운 영혼의 탈출구가 아닐까.
어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지만 어떤 외로움은 정치 문제고 사회 문제다. 특정 계층, 집단에 만연한 외로움이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맞물릴 때 무시할 수 없는 부정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20, 30대 젊은층의 외로움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외로운 그들은 스스로 침잠하든가 아니면 분노의 대상을 찾아 나선다. 또 누군가는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척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혐오와 반목을 부추기고 특정 대상을 악마화하는 데 동원하려 한다. 건전한 공론의 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극우 극좌 유튜버들에 여론이 휘둘리는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진실이 뭔지, 팩트는 뭔지 관심 없다.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더 심해졌을 외로움의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같은 행정의 영역으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다. 외로움이란 가스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이 좁은 골목길에서 죽었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갈 때 느끼는 부모의 외로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참사까진 아니라도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번지는 건 위험하다.
새해,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권력은 저 멀리 범접할 수 없는 성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권력자는 고독하다. 고독은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고통이다. 각자도생의 세상,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배제된 이들이 다수다. 그들의 외로움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선한 척하는 권력은 위선이다. 그래도 권력, 따뜻한 말로라도 외로운 영혼을 품어야 한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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