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국가도 국민도 정치적일 자유가 있다
국민 대다수가 윤석열 정부하에서 이루어진 몇몇 검찰수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탈원전, 집값조정 등 문재인 정부하에서 진행된 각종 정책적 판단들의 잘잘못을 법적으로 가리겠다는 명분인데 대부분 야당인사들 처벌로 귀결된다. 대장동 수사의 몸통도 100% 민간이익으로 끝나버릴 건설사업에 공공기관이 참여하여 일부 이익을 취하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사법적으로 재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업허가를 대가성 있는 특혜로 보겠다는 것인데 이런 식이라면 공공기관이 사업참여와 허가주체를 겸하는 모든 경우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성남FC사건도 성남시나 산하조직에 이익이 된다는 공익적 측면을 고려하여 각종 사업허가를 내준 정책적 판단을 재판으로 재평가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뇌물로 규정한다면 수많은 민관 파트너십들이 법의 도마에 올라간다(이익이 시나 공공기관으로 가지 않고 개인들에게 갔다면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미 연방대법원의 “정치적 문제(Political Questions)” 원칙은 행정부나 입법부의 정책적 판단에 사법부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분야는 국가의 중립성 문제이다. 국가는 민주적 정당성을 취득한 이상 자유롭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적 판단에 따라 민간과 ‘대가성 있는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대가로 공익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단, 국가는 민간이 국가의 정책적 판단에 반대하고 비판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즉 국가가 민간을 대할 때 친·반정부 성향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 MBC의 대통령전용기 탑승거부나 특정 성향의 민간단체들의 지원중단을 목표로 진행되는 민간보조금 감사 등은 정부와 견해차를 가진 민간인들을 입막음하겠다는 것이며 국가의 중립성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다. 오세훈의 첫 서울시장 임기 중 장애인복지확대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해서 시위참여 장애인들의 복지지원을 끊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국가의 중립성을 지키는 헌법원칙으로서 ‘견해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금지원리가 있다. 가장 회피해야 할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아, 일반적으로는 재량이 널리 인정되는 시혜적 행정행위, 직접 표현을 검열하진 않더라도 특정성향의 세력들의 표현을 약화시키기 위한 행위들에 모두 적용된다.
사실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거나 사문화된 것은 바로 고위공직자들이 ‘동료’공직자인 검찰총장에게 청탁하여 자신의 비판자들을 처단할 수 있는 법적 통로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예: 검·언유착 KBS기자 기소 사례). 매우 강력한 중립성위반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었고 심지어 아프리카의 케냐, 레소토 등에서도 위헌판정을 받았다.
우리나라 검찰은 이렇게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공격할 수단도 있지만 국가의 정책판단 공격에 용이한 도구도 있다. 직권남용죄다. 대법원판결을 보면 ‘행정의 공정성’을 직권남용죄의 보호법익에 포함하는 대목이 있는데 미사여구의 의도와 달리 이런 해석 때문에 국가의 정책판단을 사법적으로 재평가하는 통로가 되어버렸다(대법원이 더 넓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보호법익이 아니라 ‘직권’의 범위이다). 박근혜 정부 적폐청산 와중에 기부금 수령 등 각종 재량행위의 공정성에까지 범위가 확장된 후 줄어들 생각을 안 하고 있어 정권교체 후 부메랑이 되어 버렸다. 직권남용죄야말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가의 중립성을 위반하여 국민의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에 한정되어 적용되었어야 한다.
검찰에 중립성 위반의 칼날을 쥐여준 법은 개인정보보호법에서도 발견된다. 경향신문이 대통령실 채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관보 등 이미 공개된 정보들을 분석하여 대통령실 직원들의 신상정보를 포함한 보도를 하자 대통령실은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없는 조항이다. 특히 GDPR(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과 달리 우리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을 때 ‘공익을 위하여’ 개인정보를 수집, 이용, 및 제3자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조항이 없다. 그러니 보도대상의 동의 없는 모든 실명 언론보도는 제59조상의 ‘권한 없는 3자제공’으로 형사처벌이 될 위험이 있다. 형사절차의 칼자루는 행정권력하의 검경이 쥐고 있는 한 법개정이 절실하다. 국가는 정책판단에 있어 한없이 정치적일 수 있다. 그만큼 국민도 국가의 정책판단을 비판함에 있어서 한없이 정치적일 수 있어야 한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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