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로봇은 마지막 장벽만 남아… 600여 한국 참가기업 중 SW스타트업 많아 놀라”

라스베이거스/박건형 기자 2023. 1.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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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이 만난 사람]
CES 2023 참관한 서울대·KAIST·포스텍 젊은 교수 3人
CES 2023 현장에서 만난 선정윤(왼쪽부터) 서울대 교수, 공경철 KAIST 교수, 김철홍 포스텍 교수는“올해 CES는 전시 규모는 코로나 이전 수준이었지만 기업들이 미래보다 현실에 집중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건형 논설위원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3년 만에 전면 오프라인으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3′이 8일(현지 시각) 막을 내렸다. 올해 CES에는 전 세계 174국 3100여 기업이 참여했고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았다. 부스마다 길게 늘어선 줄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참가자들의 모습은 코로나 이전으로 완벽하게 복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7일 CES 전시가 한창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유레카파크에서 선정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김철홍 포스텍 IT융합공학과 교수 등 젊은 공학자들을 만나 현장에서 느낀 기술 변화와 글로벌 산업 트렌드를 들어봤다. 이들은 “규모는 코로나 이전을 회복했지만, 기업들이 추구하는 전시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공경철 교수는 “이전에 없었던 놀라운 기술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기존에 기업들이 제시했던 미래 비전의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면서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 연계를 시도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 ‘미래’와 ‘혁신’이 CES의 정체성이었는데, 기업들이 기존 비전을 다시 얘기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김철홍 “불황과 공급난으로 글로벌 산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CES에서 ‘올해 우리는 이런 제품으로 수익을 내겠다’고 강조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대에 치솟았던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데 꿈과 희망만 얘기해서는 투자자나 고객을 설득하기 힘들다. 부스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도 기술력보다는 시장성과 공급망 같은 부분이었다. 언제 이 제품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비슷한 기술과 디자인의 제품이 많아지다 보니 이런 부분도 경쟁력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돌파구 찾고 있는 헬스케어

- CES 주최 측은 인간 중심 기술을 올해의 핵심 화두로 꼽았다.

선정윤 “기술을 개발할 때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지 다시 생각하자는 얘기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라고 하면 과거에는 성능과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현대모비스나 보쉬 같은 기업들은 차량에 타고 있는 운전자와 동승자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제품과 기술을 선보였다. 기업이 고민하는 주체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된 것이다. 삼성이나 LG, 아마존, 구글이 일제히 세상의 모든 기기 간 연결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개별 기기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고려해 최적화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 카테고리만 41개에 이를 정도로 CES 전시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공경철 “CES의 핵심이 가전·TV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가구나 화장품, 농기구 업체는 물론 미국 연방우체국(USPS)이나 보험사도 CES에 부스를 차렸다. 새로운 경향은 시장 확대를 위해 CES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CES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독일 저먼바이오닉시스템스의 외골격(外骨格) 로봇 같은 경우에는 5년 전에 출시된 제품이다. 원래 산업 안전용으로 판매하던 제품을 색깔만 바꿔 노인 낙상 방지용으로 전시했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새로운 콘셉트로 포장한 것이다. 꼭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있어야만 CES에서 주목받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 헬스케어 업체의 참가가 눈에 뜨이게 늘었다.

김철홍 “헬스케어 산업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수년간 정밀하고 신기한 기술이 계속 등장했지만 아직 병원에서 쓰이는 제품은 거의 없다.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등 헬스케어 기술이 의료 분야에 적용되려면 의사와 병원 없이는 안 된다. 병원이 없는 헬스케어는 시장성이 없다. CES에서 헬스케어는 계속 확장되지만 CES 전시장을 찾는 의사는 드물다. 헬스케어가 진짜 미래 산업이 되느냐는 결국 의료계를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의학과 생명과학은 과거에는 다른 분야였지만 이젠 아무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헬스케어는 의학과 공학의 결합이다. 두 분야의 협업이 이뤄지면 헬스케어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큰 산업이 될 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3에서 구글이 설치한 부스. 구글과 삼성전자, LG전자,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는 올해 CES에서 일제히 ‘인간 중심의 연결’을 강조했다. /AFP 연합뉴스

◇전기차 시장의 승자는 결국 완성차 업체

- 로봇 분야는 어떤가.

공경철 “지금까지 CES에서 선보인 로봇들은 말을 하거나 사람의 표정을 따라 하는 것 같은 신기한 제품 위주였다. 배달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커피를 만드는 로봇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로봇들은 수요가 적으니 사업화가 어렵다. 로봇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대기업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얼마나 빨리 상용화에 성공하느냐다. 삼성, LG, 현대차가 모두 로봇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발표한 지 1~2년이 지났는데 올해는 그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인 것 같다. 로봇 산업은 이들 대기업이 상용 제품을 내놓으면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돈이 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삼성이 노령층을 돌보는 실버 분야, LG가 생활 로봇, 현대차가 산업용 로봇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내년 CES에서는 로봇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제품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 로봇 기술 발전 속도는 어떤가.

선정윤 “로봇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대만 에이수스가 내놓은 3차원(3D) 노트북은 특수 안경 없이 3D를 구현하는데 그 비결이 로봇 기술이다. 사용자 눈의 초점을 추적하는 ‘아이트래킹’ 기술, 그리고 초점 거리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액추에이터(구동 소자) 기술은 모두 원래 로봇에 쓰려고 만들어졌다. 또 화장품 업체들은 피부 표피 밑으로 화장품 성분을 주입하기 위해 소형 전자기기나 진동 기술을 접목시켜 완성 단계의 제품들을 공개했다.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는 결국 타 분야와 기술 융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CES는 이제 세계 3대 모터쇼를 뛰어넘는 자동차 전시회가 됐다.

공경철 “이전에는 소니, 다이슨 같은 전자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 기존 완성차 업체들을 압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올해 CES를 보면 결국 자동차를 가장 잘 만드는 것은 자동차 업체들이다. BMW, 벤츠는 전기차도 잘 팔린다. 현대차가 전기차에 뒤처졌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결국 자기 자리를 찾지 않는가. 자동차가 사람이 타고 달리는 이동 수단이라는 점이 변치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것 같다. 전자업체들의 콘셉트카 시연을 보면 재미는 있지만, 과연 내가 저걸 살까라는 의구심이 오히려 커진다. 다만 전자업체들이 차량 탑승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디스플레이, 카메라, 인포테인먼트 같은 전장 시장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강해진 한국의 소프트웨어 역량

-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CES에서 대거 행사를 열었다.

선정윤 “이번 CES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AMD,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반도체 업체가 총출동해 콘퍼런스와 세션을 열었다. 각 분야에 최적화된 신제품에 대한 설명이 쏟아졌다. 특히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경기 불황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투자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았다. 반도체 세션의 최대 화두는 반도체 경기 사이클이었다. 몇 년 주기로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던 글로벌 반도체 경기 사이클이 1년 이하 또는 6개월까지 짧아질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반도체 기업은 물론 반도체를 활용하는 기업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모든 기업들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 한국 업체가 600곳이나 참여했다.

김철홍 “한국 스타트업들 가운데 소프트웨어 기반 기업들이 많아서 놀랐다. 한국은 하드웨어만 잘하고 소프트웨어는 뒤떨어진다는 것은 이제 옛날 얘기인 것 같다. 별도 센서 없이 웹캠만 있으면 아바타를 만들어주는 플라스크, 업무용 글과 이미지를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뤼튼 같은 기업들에는 외국 투자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축적보다는 혁신이 중요한 분야라는 점이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이유인 것 같다.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 인기가 높고 우수한 인력이 몰리는 만큼 앞으로 한국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경쟁력은 더 강화될 것 같다.”

- 경기 불황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공경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닷컴 버블, 글로벌 금융 위기처럼 항상 있던 사이클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살아남는 기업이 결국 빅테크가 된다는 것이다. 씨를 뿌리고 큰 나무를 만들기 위해 옥석을 가리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창업자들끼리는 ‘짧게 보면 비극인데, 넓게 보면 희극’이라고 한다. 다만 2~3년 전 투자가 활발할 때의 창업하는 마음가짐과 지금 창업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선정윤(44)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 박사로 소재·디스플레이 분야 권위자이다. 투명하면서 늘어나는 터치패널, 버섯처럼 스스로 성장하는 인공 물질 시스템, 자체 무게의 68배를 들어올릴 수 있는 인공 거미줄 등을 개발했다. 2018년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달의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공경철(43) 교수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골격 로봇 전문가로 국제 재활로봇 올림픽인 ‘사이배슬론 2020′ 웨어러블 로봇 분야에서 스위스, 미국 등 경쟁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로봇 스타트업 엔젤로보틱스를 창업해 병원, 개인용 재활 로봇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김철홍(45) 교수

미국 워싱턴대에서 의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의공학·바이오 전문가이다. 차세대 진단 의료 기술인 광초음파 의료 영상 시스템을 개발해 2021년 12월 이달의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40여 편의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초고속·고해상도 현미경을 만드는 스타트업 옵티코를 2018년 창업했다.

/라스베이거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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