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치 동맹’ 중부 유럽과 원전·방산 협력 확대해야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이런 나라들은 자신이 동유럽보다는 중부 유럽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중부 유럽이 유럽의 중심 지역이라는 느낌도 있고, 벨라루스나 러시아를 유럽으로 본다면 지리적으로 더 타당한 듯하다. 이 지역에서 한국은 독일에 이은 제2의 제조업 투자 강국이다. 현대기아차, 삼성, 엘지, SK, 한국타이어, 넥센타이어 등과 유관 협력사 수백 기업들이 진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유럽, 중동, 아프리카 시장의 수출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중부 유럽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아예 없어지는 한국보다 더한 고초들을 겪어왔으나, 지금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국들이다.
이 지역에서 최근 원자력발전소 수주 건이 현안이다. 작년 폴란드 원전 진출 합의에 이어 올해 9월에는 체코 원전 최종 입찰을 앞두고 있다. 그간 이 지역은 러시아 원전이 독점하여 가장 유력하였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완전 탈락하고, 국가 안보상 이유로 중국도 배제되어, 프랑스, 한국, 미국 3국 기업 간 경쟁이다. 프랑스는 핀란드, 영국에서 수주한 원전 건설이 납기를 못 지켜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함에 따라, 주로 한국 한수원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사 간 경쟁 상황이다.
한미 간에는 그간 두 번에 걸친 양국 정상 공동 성명에서 해외 원전 공동 진출 협력에 합의했고 이를 현실로 구체화하는 것이 수주를 위한 올해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웨스팅하우스사가 지재권과 수출 통제를 이유로 한전과 한수원에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기업 간 협력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한미 양국 정부 간에는, 이익 공유를 전제로, 원전 협력을 하는 것이 글로벌 경영상 필수적인 과제다. 웨스팅하우스사는 원천 기술은 있지만, 제조·건설 등 하부 구조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 기업들 간 협력이 불가피하므로 적절한 이익 공유 구조를 만들어 기업들 간 공생 구조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개개의 입찰에서 담합은 절대 안 되지만, 전체의 차원에서 글로벌 공동 경영은 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지금 중부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국민들이 공황 상태로 미국에 대한 조야의 심리적인 의존도에 비추어 볼 때, 한미 공조를 이루지 않고서 우리 단독 원전 수주는 별 가망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원전은 단순한 경제 사업이 아니며, 정치 경제 안보의 복합 사업으로 우방국 간 백년 동맹을 맺는 성격이다. 특히 중부 유럽에서 한국은 강국이다. 폴란드에서 대규모 방산 수주는 우리의 납기 준수와 장비의 가성비에 기인하지만 아울러 양국이 둘 다 미국의 우방국으로 가치 동맹국임을 기반으로 한다. K팝과 K푸드 등 한류 문화에 대해서도 현지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한국은 점점 매력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중부 유럽에서 원전, 방산 수주가 확대되면 이어서 전기차 생산 현지 공장, 수소 경제 인프라, 전기차 배터리 소재 부품 및 생산 공장, 원전 및 방산 부품 합작 공장 등 우리와의 협력이 끝없이 확대될 것이며 이는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멋진 시작이 될 것이다. 새해 한국과 중부 유럽 간 꿈이 현실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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