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새해, 국회개혁이 절실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인권침해를 소송이나 민원으로 싸우다 보면 제도의 허점들이 보인다. 유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법률 제정안이나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의원실을 통해 의원입법 발의를 하거나, 소관 정부 부처와 논의해 정부 입법안 연구에 참여해왔다.
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발의한 이후 그 법안의 국회 처리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 보면, 그간 법안을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심히 허탈해질 때가 있다. 국회는 법안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오히려 법안의 무덤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는 국회’에 대한 시민의 큰 열망과 다르게 돌아가는 모습에 실망해 이제는 아예 정치에 관심 끄겠다는 사람, 먹고살기 힘들어져 국회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난다.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의 수가 각 국회 임기마다 가파르게 늘었다는 것은 일하는 국회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발의 이후 법안이 어떻게 심사·수정·통과되는지보다, ‘몇 개’ 법안을 발의했냐가 성과가 되기 때문이다. 내용도 모르는 법안을 용어만 바꿔서 찍어내듯 발의하는 의원, 재선 보험용으로 통과 가능성이 희박한 선심성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을 막을 방도가 없다.
근대 이후 등장한 이른바 ‘직업 정치인’의 소명이자 의무는 좋은 입법을 하는 것이다. 좋은 입법은 현장 문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의 사각지대나 모순을 보완하는 내용의 법안을 공들여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그 법안을 발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안이 통과되어 시민의 삶에 미처 생각지 못한 타격 없이 안착되기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법을 만드는 사람을 직업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국회는 입법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헌법상 국가기관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 소속 위원회 회의에 출석하지 않아도 세비(월급) 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재선이 목적이 된 국회의원은 개인의 신념이나 직업적 양심은 아랑곳없이 공천권을 가진 당을 향한 충성심을 어떻게 드러낼지 보여주기식 성과에 과도하게 시간을 쏟기도 한다.
2024년에 총선이 치러진다. 총선을 앞두고 정당별 주도권 싸움이 심해질 경우 대다수의 시민과 별 상관도 없는 정쟁이 장기화되거나 속칭 꼼수국회, 방탄국회 등 특권 악용이 도드라질까 우려된다.
마침 새해가 되자마자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인위적인 선거구 쪼개기를 줄일 수 있고, 정당보다는 인물 개개인 검증에 더 충실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그러나 좋은 선거제라도 좋은 정치문화를 토대로 삼지 않으면 더 큰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니 선거용 위성정당이 난립하면서 도입 취지가 크게 왜곡된 선례도 있었다. 그렇기에 21대 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해인 2023년 새해에는 국회개혁이 더욱 절실하다.
개혁의 과제들은 쌓여 있다. 국회를 통한 국민청원권 실질화, 상시국회 제도화, 상임위 상설소위를 통한 법안 심사 정례화,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국민소환제도의 경우 당을 막론하고 여러 국회의원이 도입하자며 법안을 발의해왔음에도 아직 진척이 없다. 물론 일부 지지층에 의존하는 팬덤 정치가 심해질 경우 마구잡이 소환 등 역기능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헌법에 부합하는 소환 사유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여 운영한다면 국회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법치주의 나라에서 국회개혁은 단순한 구호나 슬로건에 그칠 일이 아니다. 입법이 잘 작동되어야 좋은 판결과 좋은 정책이나 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뼈를 깎는 국회개혁이 있길 바라 마지않는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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